법이 정한 만큼 장애인을 고용하지 못한 기업이 정부에 내는 장애인 고용부담금은 법인세 부과 대상이 아니라는 법원 판결이 처음 나왔다. 법원은 장애인 고용부담금이 제재 성격의 공과금이 아니라 정책 목표 달성을 위한 비용 성격을 띤다고 판단했다. 그동안 고용부담금을 법인세 과세 대상으로 삼은 세무당국의 판단이 잘못됐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적잖은 금액을 장애인 고용부담금으로 내온 기업들의 법인세 환급 소송이 줄을 이을 전망이다. ○“세무회계상으로도 비용” 인정18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8부(부장판사 이정희)는 국내 저축은행 A사가 장애인 고용부담금에 매긴 세금을 돌려달라는 취지로 과세당국을 상대로 낸 경정청구 거부처분 취소소송에서 최근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약 7300만원을 돌려달라고 한 A사의 요구를 과세당국이 받아들여야 한다고 판단했다.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은 근로자 50명 이상을 둔 사업주가 전체 근로자의 3.1% 이상을 장애인으로 고용하지 않으면 일정 금액을 장애인 고용부담금으로 내도록 하고 있다. 이 법에 따라 A사도 2019년 약 1억5000만원, 2020년 약 1억6000만원을 고용노동부에 장애인 고용부담금으로 납부했다. 이렇게 지출한 부담금은 세무회계상 손해금액으로 반영되지 않고 법인세 부과 대상에 포함됐다. 2년간 약 7300만원이 장애인 고용부담금에 대한 세금으로 나갔다.
A사는 이 같은 처분이 부당하다고 보고 2021년 11월 과세당국에 법인세 경정청구를 했다. A사는 “장애인 고용부담금은 법에서 요구한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는 제재 성격의 공과금이 아니다”며 “세무회계상으로도 손해금액으로 반영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세무회계상 손해금액으로 처리된 현금흐름은 과세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하지만 과세당국은 “장애인 고용부담금은 법인세법상 손해금액으로 반영하지 않는 공과금”이라며 A사의 경정청구를 거부했다. 기획재정부가 2018년 2월 내놓은 ‘장애인 고용부담금은 법인세법 21조 5항에 해당하는 공과금’이란 유권해석을 근거로 제시했다. 법인세법 21조 5항은 ‘법령에 따른 의무 불이행 또는 금지·제한 등의 위반에 대한 제재로서 부과되는 공과금은 세무회계상 손해금액으로 반영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A사는 이후 조세심판원에도 심판청구를 했지만 이 또한 기각되자 행정소송에 뛰어들었다.
재판부는 “장애인 고용부담금은 제재라기보다는 정책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금전 지급 의무 성격이 더 강하다”며 A사의 손을 들어줬다. 과세당국의 “장애인 고용부담금에는 징벌적 성격이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형사처벌 규정이 없는 데다 최고 가산구간의 부담액이 최저임금 수준에 그친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과세 불복 소송 줄 잇나법조계에선 이번 판결을 계기로 장애인 고용부담금에 매긴 세금을 두고 기업과 과세당국 간 법적 분쟁이 잇따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상당수 기업이 A사처럼 장애인 고용부담금에 세금을 매기는 데 문제의식을 가져온 터라 이번 판결이 전환점이 될 것이란 관측이다. 법인세법에서 장애인 고용부담금을 손해금액으로 반영해야 한다는 내용이 구체화돼 있지 않다는 것도 “과세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논리의 근거 중 하나로 쓰였다. 그럼에도 기재부의 유권해석으로 인해 적잖은 기업이 장애인 고용부담금을 공과금으로 받아들여 세금을 내왔다.
대형 로펌 조세담당 변호사는 “정부 유권해석을 뒤집는 판결이 나왔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며 “과세 방침이 부당하다고 여겨온 기업이 많은 만큼 A사보다 세금 납부 규모가 컸던 기업들이 줄줄이 불복 소송에 나설 수 있다”고 말했다.
김진성 기자 jskim102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