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도 유럽처럼 비혼출산 포용해야"

입력 2023-05-17 18:20
수정 2023-05-25 17:14

“프랑스가 1.84명(2021년)의 합계출산율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은 1939년 시작한 저출산 대책의 일관성을 지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누가 정권을 잡든 세금·교육·교통 등 다양한 방면에서의 지원을 효과적으로 이어가고 있습니다.”

인구학 권위자인 데이비드 콜먼 영국 옥스퍼드대 인구학과 명예교수는 17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콜먼 교수는 영국 런던정경대에서 인구학 박사 학위를 받은 뒤 2002년부터 옥스퍼드대 교수로 근무하고 있다. 2006년 유엔 인구포럼에서 한국의 저출산 현상이 계속되면 ‘세계 첫 인구 소멸 국가’가 될 것이라고 경고해 화제를 모았다. 이날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 주최로 열린 ‘국가소멸을 부르는 한국의 초저출산, 세계적 석학에게 묻는다’ 주제의 학술행사에서 초청 강연을 한 뒤 국내 언론과 만났다.

콜먼 교수는 한국이 여전히 소멸할 위험이 있다고 봤다. 합계출산율이 2006년 1.13명에서 지난해 0.78명으로 감소하는 등 인구 지표가 더 악화해서다. 콜먼 교수는 “일본 연구진이 2750년 한국이 소멸할 것이라고 분석했는데 현재 가정이 이어진다면 이는 타당한 전망”이라고 말했다. 이는 일본의 소멸 시점(3000년)보다 250년 이른 것으로 여전히 한국이 세계 첫 소멸 국가가 될 것이란 의미로 파악된다.

콜먼 교수는 한국이 소멸을 피하기 위해 경제적 지원과 함께 사회·문화적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고 봤다. 구체적으로는 비혼 출산 비중을 높이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콜먼 교수는 “출산율을 1.6명 이상으로 유지하는 유럽 국가들의 비혼 출산 비중은 30~50%”라며 “비혼 출산 없이는 이들 국가도 출산율이 1.0명 가까운 수준으로 하락한다”고 했다. 이들 국가의 비혼 출산 비중은 한국(약 2%)보다 크게 높다. 결혼과 가족을 중시하는 한국 문화에서 비혼 출산을 장려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지적에는 “한국은 이미 (출산 관련 인식을 바꾼) 경험이 있다”며 “과거 뿌리 깊은 남아 선호 사상을 극복한 경험을 되살려야 한다”고 말했다.

콜먼 교수는 정부에 ‘정책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권이 바뀌더라도 충분한 저출산 대책을 유지한 것이 프랑스의 높은 출산율 배경이 됐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한국 정부의 구체적 정책에 관해선 난임 지원을 소득과 무관하게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봤다. 콜먼 교수는 “출산율이 낮다는 국민들의 공통된 우려가 있는데 정부가 소득이 낮은 사람에게만 난임시술을 지원한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비혼 출산과 관련된 행정적 걸림돌도 제거해야 한다고 봤다. “출생 등록부터 양육 과정까지 모든 단계에서 결혼 가정과 비혼 가정 자녀 간 차별이 있어선 안 된다”는 것이다.

국가 경제와 미래 경쟁력도 출산율을 좌우하는 요인으로 지목했다. 콜먼 교수는 “스웨덴은 우수한 일·가정 양립 정책을 갖추고 있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래 경제에 대한 신뢰가 하락하면서 출산율 저하 문제를 겪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민은 인구 문제의 구원책이 될 수 없다”고도 했다. 이민으로 인구수를 유지하면 미래의 한국은 “이민자의 후손으로 채워지게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고령화에 따른 문제를 최소화할 수 있는 적정 출산율로는 1.6~1.7명을 제시했다. 한국의 출산율(0.78명)보다는 배 이상으로 높은 수치다. 콜먼 교수는 저출산 해결에는 ‘골든 타임’이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저출산 상태가 장기간 이어지면 0명대 출산율을 당연하다고 느끼는 ‘저출산 함정’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콜먼 교수는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선 기업도 나서야 한다”고 했다. 초과근무를 줄이고, 직장 내 보육을 활성화하는 등 가족 친화적 기업 문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국의 지나친 교육열과 높은 인구밀도도 극복해야 할 요인으로 꼽았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