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영리단체 A본부장은 2017~2021년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방부로부터 받은 국고보조금 10억여원을 손녀의 승마용 말 구입과 유학비 지원, 자녀 사업자금·주택 구입, 골프·콘도 이용 등에 썼다. A본부장 가족들에게 보조금은 언제든 필요한 돈을 빼올 수 있는 일종의 ‘저수지’였다.
감사원은 A본부장처럼 정부가 지급한 보조금을 조직적으로 횡령한 비영리 민간단체 10곳과 관계자 등 73명을 적발하고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고 16일 발표했다. 앞서 감사원은 윤미향 무소속 의원이 대표로 있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지원 단체인 정의기억연대의 정부 보조금 유용 정황이 드러나자 작년 8월부터 보조금 집행실태 일제 점검을 시행했다.
감사원에 따르면 A본부장은 회계직원 B씨와 공모해 B씨의 남편·지인 등 19명을 강사로 허위 등록하고 되돌려받는 수법으로 강사료 1억1800만원을 횡령했다. 영상 제작업체 등에 81회에 걸쳐 물품·용역대금을 지급한 뒤 사업 취소 등을 이유로 되돌려 받아 자녀 회사 운영비로 4억8500만원을 빼돌리기도 했다.
한 공공외교 관련 보조단체 대표는 외교부 관련 행사 지원인력에 인건비 780만원을 지급한 뒤 680만원을 되돌려 받고도, 보조금통합관리시스템에는 다시 인건비 지급 사항을 올려 보조금을 수령했다.
여성 인권 관련 단체 대표는 여성가족부의 기록물 사업에 참여하면서 개인적으로 해외여행을 하고도 근무한 것처럼 허위로 근무확인서를 작성했다. 이를 통해 총근무일 100일 중 73일을 근무하지 않고도 인건비 665만원을 받아갔다.
이미 퇴직한 직원들이 보조금으로 계속해서 인건비를 받도록 한 뒤 수령 계좌와 연결된 현금카드를 자기 돈처럼 쓰고 다닌 동식물 보전사업 단체 대표와 회계담당자도 적발됐다. 이처럼 ‘유령 직원’의 현금카드를 사용해 빼돌린 인건비는 약 3억원에 달했다.
한 청소년보호 관련 단체 대표는 자신과 단체 이사가 운영하는 기업과 전산 용역계약 및 허위 홍보물 제작 계약을 맺어 여가부로부터 받은 1억6200여만원을 횡령했다.
경기 안산 소재 시민단체 두 곳은 세월호피해지원법에 따라 진행된 공동체 회복 프로그램 관련 보조금을 횡령한 것이 적발됐다. 한 단체는 역사·인문학 관련 독서 토론을 하겠다고 380여만원을 받고 실제로는 북한 관련 제도 탐구 목적의 청년단체 활동비로 썼다. 다른 단체는 실제 제작 능력이 없는 배우자 운영회사에 청소년 피해 회복 사업 관련 인쇄물 제작 용역 계약을 맡겨 270여만원을 빼돌렸다.
감사원 관계자는 “이번에 적발된 단체들은 허위로 증빙 서류 등을 조작해 겉보기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어 보일 정도로 횡령 수법이 대담하고 치밀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며 “증거인멸 등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해 감사위원회 의결 전 신속하게 수사를 요청했다”고 설명했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