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클래식 음악계에서 ‘최초’ 역사를 연달아 쓰고 있는 여성이 있다. 주인공은 내년 4월 독일 베를린필하모닉 오케스트라 객원 지휘자로 데뷔하는 마에스트라 김은선(43·사진).
지난 9일 해외에서 흘러온 그의 베를린필 데뷔 소식에 국내 클래식 음악계는 들썩였다. 세계 3대 오케스트라에 꼽히는 최고 악단이지만, 그만큼 장벽 또한 높기 때문이다. 특히 아시아인이나 여성이 베를린필 포디움에 서는 사례는 거의 없다. 아시아 여성 중에서는 일본인 오키사와 노도카 정도다. 한국인 지휘자 중에선 정명훈이 유일하다.
김은선은 내년 4월 베를린필과 쇤베르크의 ‘기대’, 라흐마니노프의 교향곡 3번 등을 지휘할 예정이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오페라(SFO)를 이끌고 있는 김은선은 문화예술 플랫폼 아르떼를 통해 한국 팬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는 인터뷰에서 “많은 사람이 평생 함께하길 꿈꾸는 베를린필의 지휘봉을 잡게 돼 영광”이라며 “(베를린필 지휘대에 서는) 최초의 한국인 여성으로서 한국을 대표한다는 책임감도 느낀다”고 했다. 이어 “무엇보다 지휘자로서 (베를린필과) 함께 레퍼토리를 탐구하는 게 매우 흥분된다”고 말했다.
김은선은 연세대 작곡과와 같은 대학원 지휘과를 거쳐 독일 슈투트가르트 음대에서 공부했다. 작곡을 공부하며 오페라 코치를 경험했는데, 당시 김은선의 스승은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지휘를 권유했다고 한다. 오페라 코치는 오페라에 참여하는 성악가들을 코치하고, 반주해주는 역할을 맡는다. 유럽에서는 극장에 취직하려는 초년병 지휘자들의 첫 관문으로 꼽힌다. 그는 “(지휘가) 내 인생의 길이 될 거라는 기대 없이 그저 호기심으로 도전했다”며 “나중에 알고 보니 호기심은 끊임없이 배우고 새로운 사람들과 협업해야 하는 이 직업에 매우 좋은 자질이었다”고 했다.
지휘의 길로 들어선 그는 2008년 스페인 ‘헤수스 로페즈 코보스 국제오페라 지휘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국제무대에 이름을 알렸다. 2010년 스페인 마드리드 왕립오페라극장에서 지휘봉을 잡았고, 2019년엔 SFO 음악감독으로 발탁됐다. 모두 ‘여성 최초’ 기록이었다. 특히 SFO는 미국에서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다음으로 큰 오페라단이어서 더욱 화제가 됐다.
음악을 잘 모르는 이들은 오케스트라 연주에 지휘자가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 궁금해한다. 지휘자의 역량에 따라 연주가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 묻는다.
이에 대한 김은선의 설명은 특이했다. 지휘자의 가장 중요한 역할 중 하나로 “작곡가의 옹호자가 되는 것”을 꼽았기 때문이다. 지휘자는 작곡가가 만든 악보대로 연주될 수 있도록 단원들에게 명확하게 전달하고 소통해야 한다는 얘기다. 김은선은 “(단원들이)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영감을 주고 동기를 부여하는 것도 지휘자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고 했다.
그는 코로나 엔데믹과 함께 더욱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오스트리아 빈의 슈타츠오퍼, 이탈리아 밀라노의 라 스칼라, 미국 샌프란시스코 오페라 등 유럽과 미국을 오가며 바쁜 공연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다. 도전을 이어가는 그의 다음 행보가 궁금해졌다. “저는 항상 현재 공부하고 있는 악보에만 집중합니다. 음악은 순간의 예술이기 때문에 과거나 미래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잡는 게 가장 중요하거든요. 그래서 지금 제게 가장 중요한 건 SFO에서 준비하고 있는 ‘나비부인’이에요.”
최다은/조동균 기자 ma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