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총선에서 젊은 층의 지지를 받는 진보 정당인 전진당(MFP)이 제 1야당 자리를 가져가며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2014년 쿠데타 이후 장기 집권해온 군부정권에 반대하며 변화를 열망하는 민심이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기존 제1야당은 2001년 이후 처음으로 야권의 맹주 자리를 뺏기게 됐다.
15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전날 치러진 태국 총선에서 전진당은 개표율 99% 기준(비공식 개표 결과) 하원 500석 중 151석(비례대표 및 지역구)을 차지할 것으로 예측된다. 전진당은 왕실 모독죄 폐지 등 개혁적인 공약을 내세우며 이번 총선의 돌풍을 이끌었다.
그 중심에는 1980년생 피타 림짜른랏 대표가 있다. 기업가 출신인 피타 대표는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에서 정책학 석사, 매사추세츠공대(MIT) 슬론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석사(MBA) 과정을 마친 엘리트 정치인이다. 총리 후보 지지율 조사에서 1위에 오르기도 했다.
피타는 선친이 운영하던 쌀겨기름 회사를 운영했고, 학업을 마친 후 동아시아 최대 차량 공유 앱 '그랩'의 태국 법인인 임원으로 일했다. 좋은 학벌과 배경으로 그는 스타 기업인으로 떠올랐다. 2012년 태국 배우 추티마 피타나르트와 결혼했고 2019년 이혼했다.
그는 같은 해 미래선진당(FFP)의 총선 후보로 출마해 정치권에 발을 들였다. 미래선진당은 2020년 군부 정권과 대립 끝에 해산하며 태국에선 민주화 물결이 일었다. 피타는 같은 해 새로 출범한 전진당의 당수가 됐다. 20·30대 지지율이 특히 높다.
탁신 친나왓 전 총리의 막내딸인 패통탄 친나왓이 총리 후보로 나선 프아타이당은 141석을 차지하며 전진당의 뒤를 이을 것으로 예상된다. 프아타이당은 제1야당 자리를 내놓게 됐지만, ‘민주 진영’ 야권 주요 2개 정당은 290석 이상을 확보하게 됐다. 이어 아누틴 찬위라꾼 부총리 겸 보건장관이 이끄는 야당 품차이타이당이 71석을 얻을 것으로 예측됐다.
쿠데타의 핵심 인물이 이끄는 친(親)군부 정당인 팔랑쁘라차랏당(PPRP)과 루엄타이쌍찻당(RTSC)은 각각 40석, 36석을 얻는 데 그칠 전망이다. 군부의 장기 집권에 지친 민심이 이번 총선에서 여실히 드러났다는 평이다.
야권이 승리했지만 정권 교체까지는 큰 걸림돌이 남아 있다. 2017년 개정된 헌법에 따르면 총리 선출에는 하원의원 500명과 군부가 임명한 상원의원 250명이 참여한다. 상원의원 전원이 군부 편에 선다고 가정하면 야권은 하원에서만 376표를 얻어야 한다.
총선에서 3위를 차지한 품차이타이당이 전진당, 프아타이당과 연정을 이룰지가 관건이라는 전망이다. 이 당은 중도 성향이지만 군부 중심의 현 연정에 참여했다. 품차이타이당이 연정에 합류하더라도 친군부 의원을 추가로 끌어들여야 정권 교체에 필요한 표를 확보할 수 있다.
태국 선거관리위원회는 총선 후 60일 이내에 공식 선거 결과를 발표한다. 총리 선출은 7∼8월께 이뤄질 예정이다.
신정은 기자 newyear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