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매각 진단사업, PEF에 인기 높은 까닭

입력 2023-05-15 16:04
수정 2023-05-15 16:05

국내 대기업들이 잇달아 의료 진단사업을 매각하고 있다. 글로벌 기업들이 과점 중인 시장에 가격 경쟁력으로 무장한 중국이 치고 올라오면서 ‘레드오션’이 됐다는 판단에서다. 코로나19 이후 진단전문 바이오기업이 급격히 성장한 것도 이유다. 한때 너도나도 뛰어들었던 진단사업이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15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LG화학과 SK스퀘어가 투자한 진단의료사업이 매물로 나왔다. 2018년 매각 무산 이후 5년 만에 매물로 나온 LG화학 진단사업부는 최근 글랜우드프라이빗에쿼티를 우선협상자로 선정했다. 매각 가격은 1000억~1500억원대로 알려졌다. SK스퀘어는 코스닥 상장기업 나노엔텍의 최대주주 지분(28.3%)을 제이앤더블유파트너스(J&W)에 580억원에 매각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국내 중소 진단기업이 치열한 경쟁을 펼칠 것이란 예상과 달리 사모펀드(PEF)들이 인수자로 나섰다. LG화학 진단사업부는 SD바이오센서와 진시스템, 피씨엘 등이 인수 의지를 보였으나, 가격을 보수적으로 산정해 경쟁에서 밀렸다. 그러나 PEF들은 이들보다 10~20% 웃돈을 얹어 인수가를 제시해 우선협상자 지위를 따냈다.

진단기업은 대기업의 진단사업부가 경쟁력 대비 고평가돼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의료기기에 속하는 체외진단기기는 규제산업으로 진입장벽이 높다. 제품 임상시험부터 보험 등재, 출시까지 수개월부터 길게는 2~3년이 소요된다. 병원과 연구기관도 기존 장비를 잘 바꾸지 않기 때문에 시장 진입에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든다. 이런 이유로 로슈·애보트·다나허 등 글로벌 상위 10개사가 진단 시장의 65%를 점유하고 있다. 국내 기업의 점유율은 미미한 수준이다. 최근 신흥 강자인 중국이 가세하면서 수익성도 악화했다. 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대기업들은 글로벌 진단회사의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만으로도 먹고 살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이마저도 힘들어질 것”이라며 “진단회사들이 대기업 사업부를 인수하더라도 실익이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반면 PEF는 진단기업이 안정적으로 현금을 창출해왔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LG화학 진단사업부는 매출 약 400억원, 상각전영업이익(EBITDA) 약 200억원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나노엔텍은 지난해 매출 352억원, 영업이익 43억원을 달성했다.

그러나 최종 인수까지는 난관이 예상된다. J&W는 나노엔텍과 1년 전 매각 계약을 체결했지만 대금 납입을 네 차례 연기했다. J&W는 인수 부담을 줄이기 위해 패밀리오피스 등 해외 출자자(LP)를 유치하는 데는 성공했으나 국내 SI를 찾지 못했다. 국내외 중대형 진단업체들을 태핑하고 있지만 진전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SK는 혹시 모를 거래 불발에 대비해 해외 대형 SI를 접촉하고 있다. J&W가 다음달까지 인수대금을 마련하지 못하면 인수가 무산될 가능성이 크다.

LG화학은 고용 불안에 따른 내부 반발이 걸림돌로 지적된다. LG화학은 2018년 사업부 매각을 추진했다가 임직원의 반발로 무산된 적이 있다. 업계 관계자는 “진단사업은 소수의 인력으로 운영되는데 매각에 반대하는 핵심 인력이 이탈할 경우 매출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다”며 “이렇게 되면 몸값을 높게 평가받기 어려워져 매각 협상이 난항을 겪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은 기자 hazz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