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액 10억원이 넘는 고액 예금이 지속적인 증가세로, 이들 계좌 총예금 규모가 800조원에 육박한 것으로 드러났다.
15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은행의 저축성예금(정기예금, 정기적금, 기업자유예금, 저축예금) 가운데 잔액이 10억원을 넘는 계좌의 총예금은 796조3480억원이었다. 지난해 6월 말 10억원 이상 총예금이 787조9150억원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1.1%(8조4330억원) 늘어난 것. 고액 예금 사상 최대치를 다시 경신했다.
한국은행은 매년 반기별로 예금 규모별 계좌 수 및 금액을 집계하고, 상반기와 하반기에 각각 공표하고 있다.
10억원 초과 고액 예금 계좌 수는 2021년 6월 말 8만4000 계좌, 2021년 말 8만9000 계좌, 지난해 6월 말 9만4000 계좌에 이어 지난해 말 기준으로는 9만5000 계좌로 최근 2년 사이 꾸준히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10억원 초과 저축성예금 잔액 역시 2020년 말 676조1610억원이던 것이 2021년 말 769조7220억원으로 급등하더니 지난해 말에는 800조원에 육박했다.
지난해 말 기준 10억원 초과 고액 계좌를 종류별로 살펴보면 여유 자금을 일정 기간 동안 은행에 예치해 상대적으로 고금리를 받을 수 있는 정기예금이 564조5460억원으로 1년 전 509조8150억원과 비교해 10.7%(54조7310억원) 증가했다. 반면 입출금이 자유로운 대신 이율이 낮은 저축예금이나 자유 예금은 감소했다. 기업 자유 예금은 같은 기간 234조7850억원에서 219조8900억원으로 6.3%(14조8950억원), 저축예금은 24조4480억원에서 11조5250억원으로 52.9%(12조9천230억원) 줄었다.
업계에서는 고액 정기예금 규모가 빠르게 늘어난 배경으로 금리 인상을 꼽고 있다. 한국은행이 지난해 7월과 10월 두 번의 '빅스텝'(기준금리 0.50%포인트 인상)을 단행하면서 금리 인상 랠리가 계속됐다. 인상된 금리가 예금에도 반영되자 개인 고객 자산가는 물론, 기업들도 은행 예금에 여윳돈을 넣어둔 것으로 풀이된다.
10억원 초과 고액 예금 증가율은 2021년 말 13.8%에서 지난해 말 3.5%로 둔화했다. 특히 지난해 하반기 증가율(전기 대비)은 1.1%로, 4.4% 줄었던 2013년 2분기 이후 증가율이 가장 낮았는데, 이는 지난해 10월 레고랜드 사태가 촉발한 자금 경색 등으로 대출금리가 치솟아 이자 부담이 늘어나자 기업들이 보유예금 중 일부를 대출상환에 활용했기 때문이라고 풀이되고 있다. 예금은행 기업대출금리(신규취급액 기준)는 지난해 1분기 3.35%에서 2분기 3.63%, 3분기 4.41%에 이어 4분기 5.50%까지 인상됐다.
다만 올해 들어 대출금리가 내려가고 있어 기업들의 고액 예금이 다시 늘어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경기 둔화로 투자 불확실성이 큰 상황인 만큼 기업들이 은행에 돈을 넣어두고 관망하는 분위기가 계속되리라는 관측도 있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