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가 작년 9월 발표한 내부자거래 사전공시 제도 내용을 담은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조만간 국회를 통과할 것으로 예상된다. 당초 여당 의원의 입법 방식을 추진했던 정부는 라덕연 호안 대표 등의 대규모 주가조작 사태가 벌어지자 마음이 급해진 모양이다. 작년 초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안을 약간 수정하는 형태로 다음주 법안심사소위원회에 올리기로 했다.
상장사의 대주주, 임원진, 주요 주주(10% 이상 소유 혹은 이사 파견 등 영향력 행사)가 1% 이상 혹은 50억원어치 이상 지분을 사고팔 때 최소 30일 전에 공시하라는 것이 골자다. 정보 비대칭을 줄이고, 개인투자자를 보호하겠다는 취지다. 시가를 기준으로 거래할 수 있지만 수량과 매매 시점은 특정해야 한다. 하겠다던 거래를 안 하거나, 신고 안 한 거래를 하거나, 계획과 너무 다른 거래를 하면 형사처벌 및 과징금 등의 제재를 받는다.
이는 윤석열 정부의 국정 과제에 포함됐던 내용이다. 미공개정보 이용을 막기 위해 거래 계획을 신고하면 미국증권거래위원회(SEC) 조사 대상에서 면책해주는, 그래서 사실상 신고가 거의 의무로 자리잡은 미국식 제도를 변형해 가져왔다. 2021년 말 류영준 카카오페이 대표가 스톡옵션을 받자마자 팔고, 작년 6월 2대주주 알리페이까지 블록딜(시간 외 대량매매)로 지분을 매각해 주가가 급락한 게 법안의 등장 배경이다.
취지는 옳다. 개인투자자의 수익률이 낮은 첫째 원인은 정보 비대칭이므로, 이를 해소하기 위해 미리 주요한 거래의 계획을 공개하도록 장려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하지만 현재의 법안은 너무 거칠게 느껴진다. 이대로라면 시장 혼란이 적지 않을 것이다.
누가 공시해야 하느냐부터가 문제다. 정부와 국회가 겨냥한 것은 개인 대주주다. 실제로는 법인 및 기관투자가가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정부와 국회는 국민연금 등 연기금은 공공 성격이 강하다며 빼주기로 합의했다.
그러면 자산운용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용우 의원은 일단 민간기업은 공시해야 한다고 못박고 있다. 프랭클린템플턴, 블랙록 같은 글로벌 기관투자가들은 이런 규제를 적용받으면 한국 시장 투자 자체를 재고해야 할 판이라고 걱정하고 있다. 코스닥시장 상장사 주요 지분 투자를 많이 하는 국내 가치투자형 운용사들도 곤란한 처지다.
대주주도 마찬가지다. 즉시성이 필요한 거래가 있다. 예컨대 행동주의 투자자가 지분율 싸움을 걸어오면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까? 한 달 전 공시가 의무인 상황에선 뾰족한 수단이 없다.
정부는 일단 법안부터 통과시키고 여러 예외 상황을 시행령 등 하위 규정으로 하나씩 세밀하게 잡아나가면 된다고 설명하지만, 계획되지 않은 거래를 제재 대상으로 보는 것 자체가 미국과는 다르다. 미국은 워낙 미공개정보 이용에 대한 규제가 강한 나라다. 미리 신고하면 규제의 칼날에서 빼준다고 하니 자연스레 안전항구(규제를 피할 곳)로 시장참여자들이 몰려간 것이다. 사전공시를 안 하면 조사 대상이 될 순 있지만, 공시를 안 한 것만으로 제재를 받진 않는다. 우리는 그 반대다. 사전공시가 의무이고 예외 조항을 하나씩 설정해야 한다. 현실과 맞지 않는 부분들이 나올 수밖에 없다.
법안을 뒷받침하는 철학과 논리가 충분하지 않다는 인상이 강하다. 예컨대 인수합병(M&A)은 사전공시 의무에서 제외되지만, 블록딜은 공시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M&A와 블록딜은 경영권이 수반되는 거래인지 여부만 다를 뿐 상대방이 정해진 거래다. 정보 비대칭을 활용해 불특정 다수의 개인투자자를 상대로 돈을 번 것과는 다른데도 똑같은 취급을 받는다. M&A와 달리 블록딜은 주로 가격 하락을 유발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법안이 ‘정보 비대칭 해소법’이라기보다 ‘주가 하락 방지법’처럼 보이는 것은 정부와 국회가 여론을 의식해서 법안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라덕연 대표가 “주가 올린 게 무슨 잘못이냐”며 당당한 것, 우리나라가 주요국 가운데 공매도가 금지된 유일한 국가가 된 것은 모두 시장에 대한 잘못된 인식에서 비롯됐다. 주가가 오르려면 기업이 잘 돼야 한다. 그 본질에서 멀어진 채 제도를 바꿔 주가 하락을 방어하려는 노력은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는 게 아니고 심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