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반만 팔아도 금융위기"…삼성엔 없는 '230조' 애플의 힘 [김익환의 컴퍼니워치]

입력 2023-05-14 06:00
수정 2023-05-14 13:25

"보유한 채권 절반만 팔아도 금융위기가 닥칠 겁니다."

굴리는 채권이 200조원을 넘는 애플의 파급력은 상당하다. 보유 채권을 한꺼번에 시장에 내놓으면 시장금리가 폭등하면서 금융시장이 마비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버는 돈의 상당액을 중장기 국채·회사채에 묻어 두는 애플의 투자방식은 자산운용사와 판박이다. 삼성전자가 보유한 자금 상당액을 단기예금과 머니마켓펀드(MMF) 등에 돈을 묻어두는 것과는 상반된다. 왜 이 같은 차이가 생긴걸까.

12일 애플에 따르면 이 회사의 올 1분기 말(올 4월 1일 기준) 보유한 현금·채권(재무제표 주석 기준)은 1772억2800만달러(약 233조9400억원)에 달했다. 현금은 220억5100만달러(약 29조1000억원)이었다.

나머지 상당액은 채권으로 굴렸다. 회사채(828억200만달러), 주택저당증권(224억3800만달러), 미 국채(227억5400만달러), 해외 국채(174억8000만달러), 미국 기관채(57억4300만달러), 양도성예금증권(29억9900만달러), 기업어음(2억7100만달러) 등에 투자하고 있다.

가능성은 없지만, 애플이 보유한 회사채를 시장에 쏟아내면 전 세계가 금융위기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회사채 가격이 폭락(회사채 금리는 상승)하면서 금융시장이 마비되고 기업들이 위기에 빠질 수 있다.

이 회사의 채권 수집은 이어지고 있다. 애플은 올 1분기에만 111억9700만달러 규모의 채권을 사들였다. 같은 기간 이 회사 순이익(241억6000만달러)의 절반가량을 채권 사는 데 쓴 것이다. 이 기간 설비투자는 67억300만달러에 그쳤다.

반면 삼성전자의 자금운용 방식은 상반된다. 현금과 유동·비유동 금융자산은 지난해 말 138조9236억원에 달했다. 이들 자산 가운데 상당액인 114조7835억원은 단기금융상품(1년 미만의 예금, 양도성예금증권, MMF, CP 등)으로 굴리고 있다.

애플과 삼성전자의 자금운용 방식이 다른 것은 상반된 주력사업에서 비롯했다. 애플은 아이폰 등의 디자인과 설계에만 주력한다. 반면 생산은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중국 팍스콘 등에 대부분 맡긴다. 설비투자금 수요가 크지 않은 만큼 여윳돈을 금리가 높은 채권으로 굴리고 있다.

반면 삼성전자는 반도체 설비 구축에 매년 수십조원을 쓴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50조원가량을 반도체 설비에 쏟는다. 설비투자를 위해 막대한 현금을 수시로 뽑아쓸 준비를 해야 하는 만큼 투자금 상당액을 단기 안전자산에 묻어두고 있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