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금형을 배울 생각 없습니까.” 부산의 한 금형 회사 대표가 사람을 만날 때마다 습관처럼 묻는 말이다. 1년 내내 구인 공고를 내도 지원자를 보기 힘든 데다 어쩌다 면접이 성사돼도 현장을 살펴본 뒤엔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며 발을 돌리기 일쑤여서다. ‘젊은피’를 수혈 못한 현장에는 능숙하게 금형 작업을 할 인력의 씨가 말랐다. 정년을 훌쩍 넘긴 숙련공들로 버티고 있지만 언제까지 임시방편이 통할지 자신이 없다. 이젠 고객사에서 이 회사의 금형 기술 맥이 끊길 것을 걱정하는 처지가 됐다. ○‘잇몸으로 버티는’ 제조 현장
중소·중견 제조업 현장에서 숙련공이 사라졌다. 숙련 인력이 급감하고, 중소기업 근로자의 고령화가 가파르게 진행되면서 제조업 강국의 뿌리가 흔들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0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주요 제조 현장은 ‘비상 대응 체제’로 운영된 지 오래다. 경기 남부의 한 금형업체는 200여 명의 직원 중 숙련공이 20여 명에 불과하다. 7~8년 전만 해도 경력 10년 이상의 베테랑이 100명을 넘었지만 모두 옛말이다. 현재 숙련공 중 가장 젊은 직원의 나이가 57세다. 회사 관계자는 “금형은 한 명의 숙련공이 열 사람 몫을 하기에 도제식 교육이 필수”라면서도 “사람이 없어 숙련공 육성은 꿈도 못 꾼다”고 고개를 저었다. 경남에 있는 한 용접업체는 용접 숙련공이 없어 대규모 거래를 잇달아 포기했다.
노동 강도가 센 업종일수록 숙련공을 구하기 힘들다.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에 따르면 2014년 20만 명이던 조선업 인력은 지난해 말 현재 9만5030명으로 줄었다. 감소 인력 대다수는 업력 10년 이상의 숙련공이다. 조선 용접 분야에서 남아 있는 인력의 다수는 40대(38%)와 50대(30.2%)다. 파도 및 염분을 고려해야 하는 탓에 숙련도가 중요한 선박 도장 인력(2786명)은 40대 이상이 80%(2226명)에 달한다. 건설업에선 형틀목공, 석공, 건축 배관, 도장, 조적, 비계 등에서 숙련 인력 부족 현상이 심각하다.
숙련공 ‘고갈’의 가장 큰 원인으론 제조 현장을 지원하는 인력이 급감한 점이 꼽힌다. 한국산업인력공단에 따르면 지난달 지역별로 열린 지방기능경기대회 참가자는 4729명에 그쳤다. 10년 전과 비교해 인원이 절반가량 줄었다.
1966년 처음 시행된 지방기능경기대회 참가자 수는 2010년 9878명으로 정점을 찍은 뒤 급속도로 위축되고 있다. 특히 기계와 금속분과 직종에서의 감소세가 심각하다. 올해 지방기능경기대회 세종과 제주 지역에선 기계 분과 금형과 컴퓨터 수치제어(CNC)선반, CNC밀링 응시자가 한 명도 없었다. 광주 지역에서도 금속분과 용접·배관·주조 관련 응시자가 아예 없었다. 주조 분야는 지난해 17개 시·도 중 11곳에서 출전 선수가 없어 경기를 열지 못했다. ○‘기능올림픽 1등’도 옛말자연스레 ‘엘리트’ 제조 인력도 자취를 감췄다. 이를 가늠할 지표는 국제기능올림픽대회 순위다. 한국은 1977년 23회 대회를 시작으로 19차례나 우승을 차지했지만 2015년 브라질 대회 이후론 우승과 거리가 멀어졌다. 2019년 러시아 대회에선 1971년(4위) 후 역대 최저 성적인 3위에 그치기도 했다.
숙련공 자원이 메말라가는 것은 기능 인력에 대한 사회적 시선과 대우가 예전만 못한 탓이 크다. 경남의 한 특성화고 교사는 “1970년대만 해도 기능올림픽과 숙련공 위상은 올림픽 국가대표급이었다”며 “입상자 혜택도 크게 줄었다”고 아쉬워했다.
전문가들은 임금 체계부터 외국인 근로자 정책까지 대대적인 개편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명로 중소기업중앙회 인력정책본부장은 “숙련도가 높아지면 임금을 더 받거나 승진이 빨라지는 등의 인센티브를 부여해야 한다”며 “중소기업 장기 재직 시 내집 마련이나 목돈 마련 관련 예산 등을 정부가 지원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라정주 파이터치연구원장은 “외국인 근로자 수급 정책을 기피 업종 공급에서 고급 인력 유치로 전환해야 한다”고 했다.
강경주/오유림 기자 quraso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