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그룹은 지난 8일 그룹의 로보틱스 연구개발 조직인 로보틱스랩을 ‘사업부’로 격상했다. 기존 ‘실’급 조직에서 현대차·기아의 국내판매사업부처럼 명실상부한 핵심 조직으로 자리 잡았다는 의미다. 2018년 정의선 당시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이 ‘로보틱스팀’을 신설한 지 5년 만이다.
로보틱스랩 인력 규모는 수백 명에 이른다. 로봇의 신경망·뇌 역할을 하는 소프트웨어 전문가와 움직임을 실제로 구현하는 하드웨어 개발자가 반반이다.
최근 인재 확보 경쟁이 가장 치열한 분야지만 현대차그룹 로보틱스랩엔 각계에서 인재가 모여들고 있다. 현동진 로보틱스랩장(상무)은 9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로봇은 인공지능(AI)·반도체·빅데이터·사물인터넷 등 모든 첨단 기술의 총체”라며 “현대차그룹의 미래자동차 비전인 자율주행차와 커넥티드카,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SDV)도 결국엔 로보틱스와 기반 기술을 공유할 것”이라고 말했다.
로보틱스는 자동차 제조사를 벗어나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기업’으로 진화를 선언한 현대차그룹의 핵심 신성장 동력이다. 정 회장은 현대차그룹의 목표로 ‘인류의 무한한 이동과 진보’를 강조해 왔다.
정 회장의 주도 아래 2018년 자체 로보틱스 조직을 꾸린 현대차그룹은 2021년 세계적인 로봇 기업 보스턴다이내믹스를 인수했다. 정 회장은 약 1조원의 인수대금을 마련하기 위해 사재 2400억원을 내놨다. 2030년 2256억달러(약 299조원) 규모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는 세계 로보틱스 시장에 일찌감치 베팅한 것이다.
업계에선 현대차그룹이 이를 계기로 옛 자동차 산업의 ‘추격자’가 아니라 미래 모빌리티 산업의 ‘퍼스트 무버’가 됐다고 평가한다. 미국 유력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현대차그룹은 자동차의 미래가 아니라 운전자 삶의 방식을 혁신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에런 사운더스 보스턴다이내믹스 최고기술경영자(CTO)는 “로봇이 주변 환경을 파악하고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곧 자율주행차 개발과 연결된다”고 말했다.
현대차그룹은 발 빠른 투자로 폭넓은 로보틱스 기술 포트폴리오를 확보했다. 세계 최고 수준의 관절 로봇 기술을 갖춘 보스턴다이내믹스와 바퀴 달린 로봇의 새 지평을 열고 있는 로보틱스랩의 ‘양 날개’ 덕분이다. 수평을 유지하며 계단과 경사면을 이동하는 ‘모베드’, 사람보다 더 뛰어난 균형감과 운동 능력으로 ‘3D 노동’을 대체할 것으로 기대되는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 ‘아틀라스’까지 독자 기술로 개발했다.
상용화 단계에도 진입했다. 보스턴다이내믹스는 로봇 개 ‘스팟’에 이어 작년부터 물류 로봇 ‘스트레치’를 DHL, 갭, H&M 등에 공급하고 있다. 현대차 로보틱스랩도 내년 산업용 웨어러블 로봇 ‘엑스블 숄더’에 이어 2025년 모베드를 상용화할 예정이다.
현대차그룹은 이제 우주와 가상공간으로 시야를 넓히고 있다. 지난달엔 우주 분야 국내 여섯 개 연구기관과 달 탐사용 로버 개발에 착수했다. 달에 착륙해 스스로 광물 채취, 환경 분석 등을 할 수 있는 로봇의 초기 모델 제작에 들어간 것이다.
미래엔 사람이 멀리 떨어진 곳을 직접 가는 대신 로봇을 보내 이동하는 ‘텔레프레즌스’(원격 실재) 로봇도 나올 수 있다. 가상공간의 아바타 로봇으로도 활용될 소지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로버트 플레이터 보스턴다이내믹스 최고경영자(CEO)는 “현대차와 함께 생각하고 있는 콘셉트”라고 말했다.
빈난새 기자 binthe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