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고딩 먹고 쇼핑하는 브이로그 feat. 3500만원 명품 언박싱'
'14살 중학생 명품 쇼핑 브이로그'
유튜브에서 쉽게 볼 수 있는 10대 유튜버들의 명품 언박싱 영상 타이틀이다. 언박싱은 말그대로 상자를 열어본다는 뜻으로 새로 구매한 아이템을 소개하는 콘텐츠를 뜻한다. 최근 명품 구매 연령이 낮아졌다는 지표가 나오고 있지만, 경제력이 없는 10대들까지 활발하게 명품을 소비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유튜브 뿐 아니라 서울 명동의 롯데·신세계백화점과 강남 신세계백화점 등 주요 백화점 명품관에서 앳된 모습의 어린 손님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어린이날 연휴였던 지난 주말 서울 시내 한 백화점 명품관에서 중학생으로 보이는 한 여학생이 함께 온 부모에게 "이게 제일 맘에 들어서 사고 싶다"고 말하는 모습이 기자의 눈에 포착되기도 했다.
여기에 인기 아이돌 그룹 멤버들의 명품 브랜드 앰버서더 활동이 10대들의 명품 소비를 부추긴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룹 방탄소년단, 블랙핑크 등 뿐 아니라 멤버 대부분이 미성년자인 뉴진스, 아이브와 같은 그룹들도 명품 엠버서더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부모와 함께 백화점을 찾은 학생들이 샤넬에서 "뉴진스 민지가 맨 가방", 미우미우에서 "아이브 장원영이 입은 재킷"을 사달라고 하는 것.
서울의 한 백화점의 디올 매장 직원 A 씨는 "올해 들어 10대 구매 비율이 특히 높아진 느낌이다"라며 "요즘 부쩍 초, 중학생들로 보이는 10대 학생들이 종종 부모님을 모시고 오는데, 찾는 상품이 품절돼 빈손으로 돌아가는 경우도 많다"고 전했다. 디올은 블랙핑크 지수, 방탄소년단 지민, 뉴진스 혜린 등이 글로벌 앰버서더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용돈 받는 10대들의 '명품 브이로그'최근 '잘파세대'가 명품 브랜드의 신 소비층으로 떠오르면서 청소년들의 명품 소비 행보에도 이목이 쏠리고 있다. '잘파세대'는 Z세대와 알파세대의 합성어로 1990년대 중반에서 2010년 이후에 출생한 10대 후반~20대 중반까지의 사람들을 뜻한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 베인앤드컴퍼니가 지난 1월 펴낸 보고서에 따르면, Z세대(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출생)의 첫 명품 구매 연령은 평균 15세로, M세대(1980년대~1990년대 중반 출생)보다 3~5년 빨랐다.
보고서는 지난해 MZ세대가 명품 소비를 주도한 데 이어 곧 알파 세대(2010년 이후 출생)까지 가세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2030년에는 MZ세대와 알파세대가 세계 명품 소비의 80%를 점유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들이 명품 시장의 주요 소비층으로 자리 잡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관심도 늘고 구매도 늘어나다보니 유튜브 내에서는 명품 소비를 콘셉트로한 학생 유튜버들도 늘어나는 추세다. 인스타그램에서 명품 브랜드로부터 협찬받고 활동하는 10대 인플루언서들도 적지 않다. 이들은 명품 앰배서더로 활동 중인 아이돌이 착용한 의상, 액세서리 등을 구매해 직접 후기를 올린다.
몇 년 전만 해도 유튜브 내에서 20대 후반 이상 직장인 등이 주를 이루던 콘텐츠인 '명품 언박싱', '명품 쇼핑 브이로그' 등을 비롯해 여러 아이템을 구매하고 품평하는 '명품 하울'까지 '명품'을 키워드로 동영상을 올리는 연령대도 급격히 낮아진 것. 중고등학생은 물론이고 초등학생 명품 유튜버도 눈길을 끈다. 영상 하단에는 "부럽다", "나도 사고 싶다", "대리만족하고 간다" 등의 댓글이 이어지고 있다.
한 초등생 명품 유튜버의 채널에는 '60개 한정판인 불가리 리사 시계 언박싱', '1년에 단 한 번 구할 수 있는 디올 레이디 백', 인기 영상으로는 '루이비통 VIP는 어떻게 쇼핑할까' 등의 영상이 올라와 있다. 이 유튜버는 채널 소개에서 "저의 별난 스타일이 곧 명품 스타일이고, 명품 스타일이 곧 저의 별난 스타일이 되는 그날까지 명품의 가치를 알고, 즐길 것"이라고 전했다.
이 외에도 '16세의 명품 쇼핑 브이로그', '18세 생일 기념 1000만원 쇼핑', '14세 중학생 명품 쇼핑 브이로그와 언박싱' 등이 인기 영상에 올라와 있다.10대까지 번진 명품 관심, 아이돌 앰버서더 불지펴
전문가들은 글로벌 명품 브랜드들의 낮아진 앰버서더 연령이 청소년들의 명품에 대한 관심을 부추기고 있다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최근 샤넬, 구찌, 루이비통 등 명품 브랜드들이 경쟁적으로 인기 K팝 아이돌들을 앰버서더로 발탁하고 있다. 아이돌 그룹 역시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노리고 앰버서더 발탁 소식을 적극적으로 알리는 추세다.
지난해 데뷔 당시 전원이 미성년자였던 뉴진스는 첫 앨범이 발표된 후 얼마 안 돼 명품 브랜드들의 앰버서더를 꿰 차 화제가 됐다. 지난해 11월 하니가 구찌, 조르지오 아르마니 앰배서더로 발탁된 것을 시작으로 다니엘이 버버리와 생로랑 뷰티, 민지는 샤넬 뷰티·패션·시계&주얼리의 모델이 됐다. 여기에 해린도 팝 아티스트 최초로 디올 주얼리, 패션, 뷰티 등 3개 부문에 새 얼굴이 돼 활약하고 있고, 막내 혜인은 만 14세의 나이로 루이비통 최연소 앰버서더가 됐다.
초등학생들의 강력한 지지를 받으며 '초통령'이라 불리는 그룹 아이브의 장원영은 미우미우와 프레드의 글로벌 앰버서더로, 안유진은 펜디의 한국 앰버서더로 공식 발탁됐다. 안유진은 지난해, 장원영 올해 스무살이 됐다.
하지만 경제 능력이 없는 10대의 명품 구매가 유행처럼 번지는 것에 대해서는 우려의 시선이 나오고 있다. 명품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루이비통, 샤넬, 디올은 성인 직장인들도 구매하기 어려운 고가의 물건인데, 미성년자를 모델로 발탁하고 이를 통해 구매욕을 자극하려는 행태가 아이러니하다"는 쓴소리가 흘러나온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소비라는 것은 본인 수입의 한도와 본인이 지출할 수 있는 여력 이내에서 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초등학생의 경우 본인이 돈을 버는 것도 아닌데, 어린 나이에서부터 지나치게 화려한 소비 생활이 지속되면 커서도 소비 생활을 건전하게 이어가거나 책임지지 못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10대들의 명품 소비 등이 미디어에 자주 노출되더라도 우리가 필요에 따라서 소비를 절제할 줄 아는 태도가 필요할 것"이라며 "또한 어렸을 때부터 과시욕이 형성되거나, 본인의 경제적 수준에 안 맞는 화려한 소비를 이어갈 경우 분명히 나중에 소비 습관과 관련한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면서 올바른 소비 교육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김세린 한경닷컴 기자 celin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