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이 2036년까지 국내 송·변전 설비 투자에 56조원이 필요하다고 8일 발표했다. 이날 확정한 ‘10차 송·변전 설비계획(2022~2036년)’에서다. 전력망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수년째 대규모 ‘적자 늪’에 빠진 한전이 투자 재원을 제대로 마련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날 확정한 계획에 따르면 2022년부터 2036년까지 15년간 한전의 송·변전 설비 투자에 필요한 금액은 총 56조5150억원에 달한다. 2년 전 발표한 9차 송·변전 계획(2020~2034년)의 필요 금액(29조원)보다 두 배 가까이로 늘었다.
정부가 데이터센터·전기차 보급 확대 등을 이유로 전력수요 전망치를 상향 조정한 영향이 크다.
문제는 적자투성이인 한전의 투자 여력이다. 송·변전 설비 투자는 100% 한전이 감당해야 하는데 한전은 2021년 5조8400억원, 2022년 32조6500억원의 영업적자를 낸 데 이어 올해도 10조원 넘는 적자를 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결국 제때 전기요금 인상이 이뤄지지 않으면 한전의 설비 투자 여력에 차질이 생기고 기업은 물론 일반 가정도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기요금 제때 못 올리면 전력망 투자도 멈출 판
한전이 발표한 총 56조원가량의 송·변전 설비 투자 계획에는 호남지역의 태양광·풍력발전소와 원전에서 만들어진 전기를 서해 해저 케이블을 통해 수도권에 직접 보내는 방안도 포함됐다. 송·변전망이 지나는 지역 주민들의 반발이 커지는 상황에서 호남의 남는 전력을 최대 수요처인 수도권으로 보내기 위해 한전이 찾은 고육책이다. 한전의 투자계획엔 삼성전자가 경기 평택에 증설하는 반도체 공장과 SK하이닉스의 경기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필요한 전력망도 들어 있다.
한전은 우선 2022~2026년에 17조6158억원, 2027~2031년에 21조9996억원, 2032~2036년에 16조8996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시기를 좀 더 세분화해서 보면 당장 올해 3조6856억원, 내년 3조4263억원, 2025년 4조671억원의 투자 재원이 필요하다. 2026년엔 투자 규모가 4조7908억원으로 더 커진다.
이 같은 투자 재원은 한전이 마련해야 한다. 송·변전 설비는 민간 투자가 안 되기 때문이다. 한전은 “이번 계획은 국가 첨단전략산업에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하기 위한 국가 차원의 시급하고 중대한 과제”라며 “어려운 재무 여건 아래서도 이번 계획을 차질 없이 이행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심각한 ‘적자 늪’에 빠진 한전이 이런 대규모 투자를 감당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한전은 2021년과 2022년 총 38조5000억원의 영업적자를 낸 데 이어 올해도 대규모 적자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당장 운영자금도 회사채를 찍어서 마련하고 있다. 전기요금이 제때 인상되지 않으면 전력망 투자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현재까지 상황은 한전의 계획과는 다르게 흘러가고 있다. 당초 한전은 올해 적자 해소를 위해 kWh당 51.6원의 전기요금 인상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했다. 하지만 올 1분기 kWh당 13.1원을 올린 후 인상이 멈춘 상태다. 정부·여당은 당초 지난 3월 말 예정됐던 2분기 전기요금 인상 결정을 여론을 의식해 미뤘다. 조만간 2분기 인상폭을 결정할 예정이지만 인상폭은 10원 미만에 그칠 것이란 관측이 많다. 전기요금은 원가를 밑돌고 있고 한전은 전기를 팔면 팔수록 손해를 보고 있다.
박한신 기자 p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