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검찰의 ‘가구 입찰 담합’ 기소는 경제계와 법조계의 큰 관심을 끌었다.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는 가구 입찰 담합 혐의로 국내 가구업체 8곳과 전·현직 임직원 12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이번 건은 검찰이 형사 리니언시를 적용한 첫 사례였다. 가장 먼저 자진 신고한 업체에 기소를 면제해주는 대신 검찰은 신고내용을 기초로 공정거래위원회에 앞서 직접 수사를 벌였다. 검찰은 2020년 12월 대검찰청 수사지침을 개정해 형사 리니언시를 도입했다. 공정거래법에 근거를 두고 리니언시를 운영하는 공정위와 다른 점이다. 법이 아니라 지침 개정만으로 도입해 ‘꼼수’란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지난 3월에는 윤석열 정부 들어 처음으로 그룹 총수가 구속되는 일이 있었다. 조현범 한국타이어 회장이 공정거래법상 일감 몰아주기, 횡령 등 혐의로 구속됐다. 공정위가 계열사 부당 지원 혐의로 2개 법인만 고발한 건을 자체 수사를 거쳐 조 회장까지 기소했다. 검찰은 이 과정에서 공정위에 추가 고발을 요청했다. 공정위 소관 사건은 공정위가 고발하지 않으면 검찰이 기소할 수 없도록 한 전속고발권 때문이다. 전속고발권은 이렇게 또 무력화됐다.
전속고발권은 여러 차례 존폐 논란을 겪었다. 1995년에는 헌법재판소의 위헌법률심판을 받았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일반 형사 범죄와 달리 전문적인 경제 분석을 통해 위법 여부를 판단할 필요가 있고 행정적 제재로 규제할 수 있는 공정거래 사건에 대해서는 전속고발제의 필요성을 인정했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공정경제를 추구한다는 명분 아래 폐지 시도가 있었다. 윤석열 대통령도 검찰총장 시절 “공정한 경쟁 질서를 무너뜨리는 범죄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대응해야 한다”며 폐지에 찬성 입장을 보이다 국민의힘 대선 후보로 나서며 유지 쪽으로 돌아섰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 들어 검찰이 기업인을 기소하는 사례가 크게 늘고 있다. 검찰총장이 요청하면 공정위가 고발해야 하는 의무고발요청제와 검찰 자체 수사를 통해서다. 공정위의 사전 조사와 제재 내용은 별로 안중에 없는 모습이다. 이렇게 법 집행 순서는 뒤바뀌었다. 지난해 검찰의 의무고발 요청건수는 역대 최다인 10건에 달했다. 직전 4년간은 연 평균 2건에 불과했다. 올해 4월까지도 3건의 요청이 있었다. 전속이란 말이 무색할 지경이다.
기업은 불안에 떨고 있다. 공정거래 수사에서 검찰의 영역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검찰이 압수수색으로 공정거래법 위반 관련 자료 이외의 증거를 확보해 횡령·배임 등과 같은 다른 범죄로 수사를 확대하는 건 아닌지 노심초사다. 친기업을 기대했는데 뒤통수를 맞았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물론 기업인도 죄를 지으면 죗값을 받아야 한다. 특히 입찰 담합 등 경성 카르텔에 대해서는 형사 처벌도 당연하다. 하지만 죄를 밝혀내고 기소하는 과정이 공정거래법이 정한 취지에 맞게 이뤄져야 한다. 시장지배력 남용이나 일감 몰아주기 같은 경우는 과징금이나 시정조치 같은 행정 제재가 일반적이다. 경쟁법 분야에서 형사 집행을 강화하는 것은 글로벌 스탠더드에도 어긋난다. 무분별한 형사 처벌은 기업 활동을 위축시킬 우려도 크다.
검찰은 형사 리니언시와 의무고발요청을 통해 전속고발권을 유명무실화하게 만들었다. 최근 공정위 안팎에선 ‘이빨 빠진 호랑이’란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전속고발권은 호랑이의 ‘틀니’로 전락했다. 요즘 ‘진짜 저승사자’는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라는 얘기가 허투루 들리지 않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