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말부터 글로벌 증시를 괴롭혔던 미국 물가 상승률은 느리긴 하지만 차츰 둔화하고 있다. 이는 곧 도래할지 모르는 경기 침체의 신호탄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럼에도 미국 고용은 여전히 강세여서 미국 중앙은행(Fed)의 통화 정책에 대한 예측을 어렵게 하고 있다. 실리콘밸리은행(SVB)발 금융 불안과 상업용 부동산 부실 우려가 금융시장의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지만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현재로서 크지 않다.
국내 사정도 비슷하다. 역대 최악의 수출 부진에 점차 증폭되고 있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가능성, 점차 커지는 경기 침체 우려에 대한 목소리는 분명 증시를 압박하는 요인이다. 그런데도 이런 의심을 비웃기라도 하듯 일부 섹터가 과열 양상을 보이고 있다. 시장 참여자들이 작년부터 이어지는 불확실성을 이유로 선뜻 투자에 나서지 않거나 의사 결정을 미루는 사이 시장은 바닥을 찍고 완연히 반등하는 모양새다.
일본의 유명 투자자인 우라가미 구니오는 저서 <주식시장의 흐름을 읽는 법>에서 증시 사이클을 금리와 경기 실적을 연계해 금융장세, 실적장세, 역금융장세, 역실적장세 등으로 구분한다. 이런 패턴으로 주기적인 회복·상승·하강·침체가 반복돼 왔다는 것이다. 언뜻 보면 우리가 겪는 사계절과 비슷한 점이 많다. 핵심은 매년 계절이 번갈아 돌아오듯 불확실한 시장에도 일정한 법칙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영원한 상승 혹은 영원한 하락은 없다.
하루하루 등락을 거듭하는 주가에 일희일비하다 보면 증시는 혼돈으로 가득 찬 것처럼 보인다. ‘주가는 불안의 벽을 타고 오른다’는 오랜 증시의 격언처럼 확실한 것 하나 없는 시기다. 그럼에도 어느덧 금융시장은 비정상의 범위를 벗어나 정상으로 회귀할 것이다. 작년 하반기 최악에서 벗어난 주가와 채권시장의 반등은 점차 봄이 오고 있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확신이 지배하는 시장은 오히려 위험과 오판의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반대로 불확실성이 팽배한 시장이라도 저점을 찍고 회복하는 사이클에서는 과거의 두려움을 떨쳐내고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 지금이야말로 나무가 아닌 숲을 봐야 할 때다.
안용섭 KB증권 WM투자전략부 수석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