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프리미엄 스타트업 미디어 플랫폼 한경 긱스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글로벌 스타트업 생태계 랭킹 시스템 '스타트업블링크'에 따르면 싱가포르는 동남아시아 스타트업 생태계 순위 1위 국가입니다. 중동을 포함한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는 이스라엘에 이어 2위에 올라 있고, 전 세계적으로는 7위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싱가포르 정보통신미디어개발청(IMDA) 등 정부 차원에서 각종 지원책을 마련해 자국 스타트업을 육성하고, 해외 스타트업에도 다양한 도움을 주고 있는 덕분입니다. 한국 스타트업도 최근 싱가포르를 비롯한 동남아 시장 진출에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은행권청년창업재단(디캠프)은 한국과 싱가포르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하면서 두 나라의 스타트업 생태계 확대를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 중입니다. 디캠프가 최근 싱가포르에서 디데이를 개최한 배경이기도 합니다. 한경 긱스(Geeks)가 현지에서 취재한 내용을 전해드립니다.
"싱가포르는 동남아시아의 테크와 비즈니스 중심지로, 글로벌 시장 진출을 위한 테스트베드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개발한 닭고기 대체육은 소고기나 돼지고기 선호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동남아 시장에 어울리는 제품입니다."
은행권청년창업재단(디캠프)이 지난 4일 싱가포르에서 개최한 스타트업 경진대회 디데이에서 우승(디캠프상)을 차지한 안현석 위미트 대표의 말이다. 위미트는 버섯 등을 주재료로 닭고기 대체육을 개발하는 회사다.
대체육을 활용해 프라이드치킨, 꿔바로우, 깐풍기 등과 비슷한 요리를 만들어낸다. 안 대표는 "그동안 개발된 대체육은 콩을 쓰는데 씹으면 스펀지 같은 느낌을 준다"며 "우리는 버섯을 활용해 고기처럼 뜯어지는 느낌과 식감을 살렸다"고 강조했다.
동남아 시장 개척하는 K스타트업싱가포르, 베트남,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시장을 개척하는 한국 스타트업들이 늘어나고 있다. 오늘의집(버킷플레이스), 마켓컬리(컬리), 야놀자 등 대형 업체들뿐만 아니라 초기 단계 스타트업들도 동남아 지역에 활발히 진출하고 있다. 젊고 빠르게 성장하는 동남아 시장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기 위해서다.
동남아 국가들의 평균 연령은 31.2세로 한국(43.4세)보다 12.2세가 낮고, 인터넷 사용자 수는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글로벌 벤처캐피털(VC)들도 싱가포르 등 동남아로 몰려드는 추세다. 싱가포르는 2014년 '스마트네이션'을 국가 비전으로 선포하고, 다양한 스타트업 지원 정책도 펴고 있다. 2020년부터 일정 조건을 만족하는 스타트업은 설립 후 3년간 과세 소득 10만싱가포르달러(약 1억원)에 대해 75% 세액 감면 혜택을 주기도 한다.
디캠프가 해외 첫 디데이를 싱가포르에서 개최하면서 국내 유망 스타트업을 싱가포르 정부기관과 VC들에 소개하는 자리를 마련한 이유다. 이번 디데이는 16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5개 팀이 참가했다.
위미트를 비롯해 △휴레이포지티브(만성질환자 헬스케어 플랫폼) △옴니스랩스(인공지능 기반 공간정보 영상분석 솔루션) △그레이드헬스체인(건강등급 평가·관리 기반 보험 솔루션) △카이헬스(인공지능 기반 난임 솔루션) 등이 동남아 시장 진출을 위한 회사 전략과 솔루션을 소개했다.
디캠프상을 받은 위미트는 버섯으로 대체육을 만드는 기업이다. 소고기나 돼지고기가 아닌 구운 닭고기의 식감을 살리는 데 집중하고 있다. 기존 대체육과 달리 콩 대신 새송이버섯을 활용한다. 닭고기와 맛은 비슷한데 콜레스테롤과 트랜스지방이 없고, 식이섬유 100%에 포화지방이 닭고기보다 50% 낮아 심혈관계 질환이 있는 소비자도 편하게 먹을 수 있다고 회사 측은 소개했다.
위미트는 환경과 동물, 건강에 관심이 많은 20~30대 시장을 노리고 대체육으로 꿔바로우, 깐풍기, 마살라 등의 요리를 개발해 내놨다. 지난해 11월에 열린 디데이에서 한국성장금융상을 받기도 했다.
IMDA상을 받은 카이헬스는 난임 시술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 좋은 배아를 고르는 인공지능(AI) 솔루션을 개발한 기업이다. 시험관 시술이 성공하려면 좋은 배아를 선별하는 작업이 필수다. 카이헬스는 담당 주치의가 경험을 판단으로 진행하는 시술을 데이터로 객관화시키면 임신 성공률을 높일 수 있다고 판단하고 좋은 배아를 고르는 작업을 AI 알고리즘에 맡겼다.
이혜준 카이헬스 대표는 "현재 난임 시술 성공률은 30%에 불과하지만 자사 솔루션을 활용하면 최대 10% 이상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서울대 의과대학을 졸업한 산부인과 전문의 출신이다. 2021년 12월 디캠프와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이 공동으로 주최한 미니 디데이에서 우승을 차지한 바 있다. 이 대표는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시장에서 성과를 낸 뒤에 태국 등지에도 진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레이드헬스체인은 건강검진 데이터와 의료기록 데이터를 기반으로 건강등급을 산출하고 금융 혜택을 제공하는 '로그' 서비스를 운영한다. ABL생명, 하나손해보험 등 6개 보험사가 그레이드헬스체인의 건강등급을 기준으로 보험료를 할인 또는 증액하는 상품을 제공 중이다. 할인 대상은 대개 1~4등급이며, 1등급은 최대 40%의 원가 할인을 적용받는다.
그레이드헬스체인은 2020년 금융위원회 혁신금융서비스로 선정됐고, 건강등급 시스템 관련 특허도 보유하고 있다. 2022년 말 기준 누적 가입자 수는 21만 명으로, 앞으로 건강등급을 대체 신용평가 요소로 활용해 대출 금리와 예금 금리까지 혜택 범위를 확장할 계획이다.
휴레이포지티브는 만성질환 관리 솔루션을 제공하는 디지털 헬스케어 기업이다. 각각의 질병에 특화한 13개 스타트업을 얼라이언스 형태로 모아 고객에게 개인 맞춤형 건강관리 정보를 제공한다. 삼성화재와 함께 건강관리 서비스 '마이헬스노트'를 출시했다. 또 현대해상, 국민건강보험공단 등의 고객사를 확보하고 있다. 글로벌 진출에 도전하고 있는 휴레이포지티브는 동남아, 일본, 중동 등의 지역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할 계획이다.
옴니스랩스는 ‘딥블록’이라는 자체 개발 머신러닝 AI 플랫폼을 통해 항공우주 영역 같은 대용량 공간의 정보 데이터를 쉽게 분석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실제 지구를 관측하는 위성, 항공기에서 수집되는 영상은 100테라바이트(TB)에 달한다. 너무 방대한 용량이라 전문가라 해도 이를 분석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하지만 딥블록을 사용하면 초당 최대 15기가바이트(GB)의 위성, 항공 영상 데이터를 AI 기반으로 분석할 수 있고, 다양한 이미지 분석 업무를 자동화할 수 있다. 옴니스랩스는 싱가포르 정부 지원 사업인 '지형 공간 분석' 산업의 빠른 성장에 서비스 확장 기회를 노리고 있다.
이날 디데이 심사위원으로는 IMDA 등 싱가포르 정부기관과 센토벤처스, 골든게이트, 오픈스페이스, 틴멘캐피탈, 인시그니아벤처파트너스 등 현지 VC 임원 등이 초대됐다.
김영덕 디캠프 대표는 “싱가포르 디데이를 통해 국내 스타트업의 동남아 진출이 더욱 활발해지길 기대한다"며 "IMDA를 비롯한 싱가포르 정부, 파트너들과도 활발한 교류를 통해 국내외 스타트업 생태계를 키우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 시상자로 참석한 최훈 주싱가포르한국대사는 "많은 이들이 알고 있듯이 싱가포르는 비즈니스 친화적인 국가"라며 "한국 스타트업이 구글, 아마존과 같은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길 바란다"고 했다.
디캠프, '한-싱가포르' 가교 역할디캠프는 한국과 싱가포르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하면서 두 나라 스타트업 지원에 힘쓰고 있다. 이번 싱가포르 디데이 전날에는 싱가포르핀테크협회(SFA), 싱가포르기업청(ESG), 글로벌창업이민센터(OASIS) 등과 함께 한국으로 사업을 확장하려는 싱가포르 스타트업에 비자 신청과 법인 설립 등과 관련한 정보를 제공하는 '밋코리아' 행사도 개최했다. 싱가포르 스타트업 37개사가 참가해 한국 시장 진출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싱가포르 스타트업 생태계에 국내 VC 등도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한국투자파트너스 등이 현지에 법인을 세우고, 관련 투자를 이어가고 있는 배경이다. 한국투자파트너스의 동남아 투자 전략은 '핀테크' 중심이었지만 최근에는 다양한 투자처를 발굴해 나가고 있다.
대표적 포트폴리오로는 △베트남 전자상거래 플랫폼 티키 △베트남 모바일 콘텐츠 스타트업 아포타 △싱가포르 클라우드 스타트업 구쉬클라우드 △인도네시아 헬스케어 스타트업 헬로닥 △태국 핀테크 기업 래빗인터넷 등이 있다.
김종현 한국투자파트너스 싱가포르법인장은 "한국 스타트업들이 동남아 VC에 직접 투자를 받기는 쉽지 않다"며 "동남아 VC들은 한국과 달리 직접 경영에 관여하려는 경향이 강하고, 의사소통도 쉽지 않은 문제들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서로 문화적인 이해가 이뤄져야 한다"며 "한국투자파트너스는 동남아에서 그동안 쌓아온 네트워크를 통해 국내 스타트업에도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싱가포르=안정락 기자 jr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