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만 해도 세계 70여 개국에서 쓰이는 애플페이가 한국에 도입될 것이란 전망은 많지 않았다. 애플페이 결제에 필요한 근접무선통신(NFC) 단말기 인프라가 국내에 갖춰지지 않은 데다 애플에 지급하는 수수료 부담도 상당할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이다. 가맹점 수수료 인하 여파로 결제 부문에서 이익률을 높이지 못하는 국내 카드사로선 애플페이를 적극적으로 도입할 유인이 없었다.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사진)의 생각은 달랐다. 현대카드가 ‘금융 테크기업’으로 탈바꿈하기 위해서는 애플과 선제적인 협업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정 부회장의 의지에 따라 현대카드는 이미 6년 전부터 애플페이 결제 방식이자 세계에서 보편화한 비접촉 NFC 결제 기능을 발급하는 모든 신용카드에 적용하고 있었다.
현대카드가 애플페이를 도입하고 한 달이 지나면서 정 부회장의 ‘승부수’가 통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4일 현대카드에 따르면 애플페이 출시 이후 한 달간 신규 발급한 카드는 35만5000장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56%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신규 회원 중 MZ세대(밀레니얼+Z세대)가 79%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20대가 51%, 30대는 28%, 40대는 12%였다. 카드사 간 마케팅 경쟁이 제한돼 신규 회원 유치가 정체하는 업계 상황에서 고무적이라는 평가다.
현대카드 고객이 지난달 말까지 애플페이로 결제한 건수는 930만 건에 달했다. 애플페이 전체 결제 금액 중 9%는 해외 결제액이다. 일반 카드 결제 금액의 해외 결제 비중이 2% 수준인 것에 비해 4배 이상 높은 수준이다. 애플페이에 신용카드를 등록할 때 카드 정보를 암호화해 발행하는 번호인 ‘토큰’은 현재까지 200만 건을 넘어섰다. 정 부회장은 앞서 SNS에 “애플 측이 ‘역대 최고 기록(highst record ever)’이라고 표현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애플페이 흥행으로 다른 카드사의 고심이 깊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 관계자는 “오너 경영인의 결단이 있었기에 애플페이가 한국에 도입된 측면도 있다”며 “회원 이탈을 막기 위해서라도 애플페이와 손을 잡는 카드사가 나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