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 전세 시장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올초까지만 해도 급등한 금리와 입주 물량 폭탄으로 가파른 급락세가 나타났지만, 최근 들어 가격이 수억원씩 오른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오는 10월 중·고교 배정을 앞두고 자녀를 둔 학부모의 전입 수요가 빠르게 늘면서 인근 전세 시장이 살아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서울 전역에 역전세가 확산하고 있는 데다 빌라 전세 사기까지 맞물리면서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여겨지는 강남 아파트에 전세 수요가 몰리는 것으로 풀이된다. ○‘맹모’가 떠받치는 강남 전세 수요
4일 부동산 빅데이터 업체 아실에 따르면 이날 기준 강남 아파트 전세 매물은 총 7221건으로 집계됐다. 지난달 초만 해도 8050건이었는데 한 달여 만에 10.3% 줄었다. 강남 대치동에 있는 한 공인중개 관계자는 “하반기 자녀 학교 배정을 염두에 둔 전세 수요가 늘면서 급매물을 포함한 매물이 잇따라 소진되는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대치동에 있는 래미안대치팰리스 전용 94㎡는 지난 3월 말 15억9000만원에 전세 계약이 체결됐다. 동일 면적대 전세 호가가 이달 17억원까지 올랐다는 게 인근 공인중개 관계자의 설명이다. 올 2월 말만 해도 15억원 안팎에 전세 계약이 체결됐었다.
인근 대치삼성1차의 경우 전용면적 97㎡ 전세 계약이 지난달 말 13억3000만원에 이뤄졌다. 동일 면적대가 11억8000만원에 전세 계약을 맺어 불과 보름 새 1억5000만원 올랐다. 1월 전세 시세는 10억원 안팎이었다. 지난달 이후 실거래가와 호가가 빠르게 오르고 있는 셈이다. 대치래미안하이스턴도 전용 110㎡ 전세가 지난달 중순 15억4000만원에 거래됐다. 올초 13억~14억원대였던 전세 시세가 4개월 새 1억원 이상 뛰었다. ○급매물 사라지고 1억~2억원씩 ‘쑥’전문가들은 학군 특성이 크게 작용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대치·도곡·역삼동 등 강남 주요 지역이 우수한 학군으로 꼽히는 만큼 올해 말 인근 중·고교 배정을 앞두고 전입 수요가 늘고 있다는 설명이다. 도곡동 K공인 관계자는 “올초까진 금리 급등에 부동산 시장 둔화 전망, 입주 물량 폭탄까지 맞물려 주변 아파트 전셋값이 고점 대비 30%가량 급락했다”면서도 “최근엔 전세 수요가 늘다 보니 전셋값이 바닥을 찍고 다시 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강남 아파트 전셋값 하락폭은 둔화하고 있다. 지난 4월 마지막주 강남구 아파트 전셋값은 한 주 전에 비해 0.1% 떨어졌다. 2월만 해도 매주 하락폭이 1.5% 안팎에 달했는데 지난달부터 하락폭이 줄고 있다.
전셋값 반등 배경엔 강남 아파트 매매 시장에 조금씩 훈풍이 불고 있는 영향도 있다. 통상 전셋값은 매매 가격과 비례해 움직이는 특성이 있다. 금리 불확실성이 조금씩 가시면서 실수요에 투자 수요까지 더해 매수 심리가 살아나고 거래량도 회복되고 있다. 업계에서는 강남 주요 지역에서 금리 인상 국면 때 급락했던 집값이 지난해 수준까지 올라온 것으로 보고 있다. 여경희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은 “전세 사기와 역전세 이슈가 겹치면서 빌라 전세 기피 현상이 심화한 데다 상대적으로 역전세 우려가 적은 강남 아파트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다”며 “집값 조정 국면에서도 인기 주거지에 관심이 몰리는 양극화 현상은 심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