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광이 도시 하늘을 뒤덮었다. 거대한 폭발이 일어난 듯한 이 장면은 한국 아방가르드 사진의 선구자 황규태(1938~)가 1969년 찍은 ‘불타는 도시’ 연작의 하나다. 촬영한 필름을 불에 그을려 얻은 효과인데, 당시 한국에선 볼 수 없었던 파격적인 작업이었다.
그는 대학 졸업 후 일간지 사진기자로 일하면서도 사진 합성, 다중노출 등 다채로운 기법을 쓴 작품을 선보였다. 이런 실험 정신은 1990년대 디지털 사진이 등장한 뒤 물 만난 고기처럼 왕성해졌다. 파일을 확대하면 결국 남게 되는 픽셀들을 재조직한 ‘픽셀’ 연작을 탄생시켰다. 사진을 구성하는 단위들을 순수한 심미적 요소로 변화시킨 시도였다.
그 작품들에 대해 “사진이냐 아니냐”는 논란이 일기도 했지만 작가는 그런 구분에 의미를 두지 않았고 아직도 새로운 실험을 계속하고 있다. 그의 활동 60년을 기념해 최근 충남 천안 아라리오갤러리에서 ‘황규태 : 다양다색 60년’ 전이 개막해 10월 8일까지 이어진다. 경기 성남 아트스페이스J에서도 작가와 후배 사진가들이 함께하는 전시 ‘황규태와 친구들’(5월 11일~6월 27일)이 열린다.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