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방미의 안보·외교적 성과가 대단한 것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북한 핵 위협에 맞서는 확장억제 강화와 이를 이행하기 위한 핵협의그룹(NCG) 구성, 미국 핵 탑재 잠수함 등 핵전략 자산의 정기적 한반도 전개, ‘파이브 아이즈’(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 5개국의 정보협의체)와 동등한 수준의 전략적 정보를 공유하는 사이버 동맹 체결이 안보 동맹 핵심 성과다. 미국 펜타곤 국가군사지휘센터(NMCC)를 방문해 미군 수뇌부로부터 전략적 감시 체계와 위기대응 체계를 보고받은 일도 중요한 성과였다. 미국 상·하원 합동의회와 하버드대에서 ‘자유’를 키워드로 한 가치 동맹을 역설한 것은 화룡점정이었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채택한 ‘워싱턴 선언’은 1953년 이승만 대통령이 체결한 ‘한미상호방위조약’을 핵 시대에 맞춰 업그레이드한 ‘제2의 한미상호방위조약’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경제적 성과도 적지 않다. 윤 대통령의 방미 첫 경제적 결실은 넷플릭스의 25억달러(약 3조3000억원) 투자 유치를 끌어낸 것이다. 투자금은 한국 드라마, 영화 등 K콘텐츠 창작 지원에 쓰인다. 미국영화협회(MPA) 회장단과 파라마운트, 워너브러더스디스커버리, NBC유니버설, 소니픽처스, 월트디즈니, 넷플릭스 등 6대 영화사 관계자가 참석한 ‘글로벌 영상 콘텐츠 리더스 포럼’도 열었다. 글로벌 영상 콘텐츠 시장의 강자들이 외국 정상 앞에 한꺼번에 모인 것은 전례가 없는 일로, K콘텐츠의 높아진 위상을 보여준다.
의료 디지털 제약 등 바이오 분야에서도 23건의 투자 및 업무 협약(MOU)을 잇달아 맺었다. 보스턴에서는 ‘한·미 클러스터 라운드테이블’을 개최하고 협업을 통해 한국에도 보스턴과 같은 혁신 클러스터 구축을 추진하기로 했다. 데이비드 브라운 하버드 의대 매사추세츠병원(MGH)장, 글로벌 제약기업인 모더나의 스테판 방셀 최고경영자(CEO) 등이 참석했다.
윤 대통령은 한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보스턴의 매사추세츠공대(MIT)를 방문해 반도체 연구의 대가로 꼽히는 아난타 찬드라카산 MIT 학장, 모더나 공동 창업자인 로버트 랭거 교수 등 디지털·바이오 석학과도 만났다. 정부는 MIT 석학들과 지속적인 네트워크를 구성해 한·미 디지털·바이오 협력을 강화하고 인공지능(AI), 디지털 기술, 의료 데이터를 접목한 ‘디지털·바이오 이니셔티브’를 발표할 예정이다.
윤 대통령은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의 영접을 받아 미국 항공우주국(NASA) 우주센터 중 한 곳인 워싱턴DC 인근 고더드 우주비행센터를 방문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NASA는 ‘우주탐사와 우주과학에서의 협력에 대한 공동성명서’를 체결하고 달 탐사 프로그램, 위성항법시스템, 우주탐사 등의 분야에서 공동 과제를 발굴해 하나씩 구체화해 나가기로 했다. 새로 설립하는 우주항공청(KASA)이 구체화 작업을 주도할 계획이다. 윤 대통령은 미국 국빈 방문 기간에 바이오 분야 23건 등 총 50건의 MOU를 체결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반도체지원법에 대해서는 계속 협의해 나가기로 했다고만 하는 등 한국 기업들의 우려를 덜어줄 뚜렷한 방안이 보이지 않은 점은 아쉬운 대목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미 동맹 업그레이드에 맞게 경제·기술 분야에서도 양국이 윈윈할 수 있는 구체적인 해법을 추진해야 경제·기술·정보 동맹으로 격상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