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대 오른 윤 대통령 경제 리더십…국민 공감·설득이 관건 [사설]

입력 2023-05-01 17:38
수정 2023-05-02 06:57
외교의 시간이 끝났다. 이제 다시 경제와 일자리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1주년(5월 10일)은 공교롭게도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답방이 마무리되는 시점과 겹친다. 외교적 수사의 성찬이 지나가면 엄중한 경제 현실이 다가온다. 예나 지금이나 국민은 먹고사는 문제, 경제 활성화에 대한 대통령의 강한 리더십을 요구한다. 그 기대치를 얼마나 충족하느냐에 따라 정부에 대한 평가가 달라진다.

현재 경제 상황은 1년 전보다 훨씬 좋지 않다. 인플레이션과 고금리 구조 속에서 주요국의 수요가 급감하고 산업 현장 곳곳에 재고가 쌓여 있다. 대기업도 힘들지만 경기 침체에 취약한 중견·중소기업의 어려움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2금융권의 기업대출 연체율이 약 7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으로 치솟았고 은행들의 가계·기업 연체율도 2년6개월 만에 최고치를 찍었다. 자유 진영과 전체주의 진영 간 배타적 공급망 경쟁은 투자와 생산기지의 해외 이전을 가속화하고 국내 산업 생태계의 존립을 위협하고 있다. 가장 심각한 것은 14개월 연속 적자를 이어가고 있는 무역수지다. 반도체 경기 악화만으론 설명되지 않는 지경까지 왔다. 4월 수출액은 496억달러로 1년 전보다 83억달러가량 줄었는데, 반도체 수출액 감소치(44억달러)를 제외하더라도 다른 품목의 수출 부진 양상이 상당히 심각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윤 대통령은 지난 1년의 정책적 성과를 돌아보면서 정부가 단기적으로 할 수 있는 일과 중장기적으로 모색해야 할 일을 분명하게 구분한 뒤 장단기 정책 로드맵을 다시 한번 정교하게 가다듬어야 한다. 그리고 경제 실상과 정책의 한계, 향후 경제운용 방향과 전망 등을 국민에게 소상하게 알리고 설명할 필요가 있다.

첫째, 정부 스스로 솔선수범해야 한다. 지금의 경기 침체는 국내외 정세 변화 및 글로벌 금융시장 불안과 긴밀하게 맞물려 있다. 한국이 독자적으로 재정·통화 확장 정책을 쓴다고 해서 경기를 살릴 수 없다. 오히려 정부 스스로 긴축의 묘를 살려 나가야 할 시기다. 그래야 나중에 경기부양을 위한 탄력적 재정운용 공간을 만들 수 있다. 내년도 예산은 최대한 보수적으로 편성하면서 경기 활성화 효과가 큰 분야엔 과감하게 재정을 투입하는 선택과 집중이 중요하다.

둘째, 전세 사기, 주가 조작 등으로 불안감이 커진 만큼 국민이 보다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경제활동을 영위할 수 있도록 이른 시일 내에 자산시장 신뢰 시스템을 복원하고 더 이상 억울한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취약계층에 대한 금융안전망을 확보해야 한다. 특히 ‘뱅크런’ 등으로 유동성에 어려움을 겪는 선진국 은행의 위기가 국내로 전이되지 않도록 금융시스템 전반을 점검하고 각 금융사 경영진에 위기관리 책임을 명확하게 부여해야 한다.

셋째, 초기 방향을 잘 잡고도 지지부진한 3개 구조개혁에 대한 분명한 청사진을 제시해야 한다. 한국 경제는 노동 교육 재정(연금) 개혁 없이 성장 잠재력을 끌어올릴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 저출산 저성장 국면도 타개할 수 없다. 많은 국민이 이 사실을 막연하게 느끼는 정도일 뿐, 절박함은 크지 않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구조개혁의 요체는 교육과 훈련을 통해 인재를 키우면서 노동의 질을 끌어올리고, 고용시장의 유연성을 높여 기업 투자와 창업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다.

이 같은 장단기 로드맵을 구현하는 데는 적잖은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거대 야당의 비협조와 발목잡기, 반시장적 입법 폭주가 걸림돌이다. 예고된 개혁에 대한 이익집단의 반발도 만만찮다. 하지만 야당이 언제나 대통령의 최대 정적이라는 점도 인정하고 가야 한다. 정책에 변화를 주거나 새로운 개혁을 할 때는 야당과 기득권 집단이 동시에 달려든다. 여기까지는 버텨낼 수 있다. 하지만 국민이 반대하고 나서면 방법이 없다. 윤 대통령은 이번 방미 외교에서 보여준 디테일을 잘 살려 최대한 겸손하고 성실하게 국민에게 국정 방향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 대통령을 온전히 대통령답게 일할 수 있게 하는 토대는 오로지 국민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