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05월 01일 10:52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주식시장 대혼란을 초래한 신종 '폰지(다단계 금융사기) 주가조작' 사건이 드러나자 모두가 '피해자'라고 외치고 있다. 이 사기 사건의 주범으로 지목된 자산주 전문 투자컨설팅업체 호안의 라덕연 대표도 방송에 나와 자신을 '피해자'라고 말하고 있다.
이번 주가조작의 핵심 수단이었던 차액결제거래(CFD)의 독특한 속성 때문이다. 일반 주식투자는 최악의 경우 원금만 잃지만 CFD는 원금 이상의 손실도 볼 수 있다. 선물옵션과 속성이 비슷하다. 라 대표는 4년 전만해도 해외선물 전문가로 활동한 인물이다. 이번 사기극의 설계자로 인정한 그가 천문학적인 손실을 기록한 주식 계좌를 들이밀면서 이익을 본 사람이 '가해자'라는 논리를 펴고 있다. 검찰과 금융당국이 이런 사태를 방치하면서 각종 음모론이 무차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원금 넘는 손실’ 선물옵션 같은 CFD 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이번 신종 폰지 주가조작의 특징은 펀드처럼 자금을 모아서 투자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1000명이 넘는 개인 자금을 모아 각자 명의로 CFD 계좌를 만들고 거래량이 적은 자산주를 사모았다. 이들 계좌 수익률은 레버리지 효과를 톡톡히 누렸다. 주가가 10% 오르면 25% 수익률이 찍혔다. 선광은 3년 동안 17배가 올랐으니 초기 투자자는 40배 이상의 수익률을 냈다는 얘기다. CFD는 투자자 자금의 1.5배를 증권사가 빌려주고 대신 매매해주는 구조다. 증거금 1억원을 넣으면 1억5000만원을 대출해주고 2억5000만원어치 주식을 사준다.
반대매매가 시작되자 상황은 돌변했다. 도미노처럼 8개 종목 반대매매가 나왔는데 시장에서 사겠다는 주문이 없어 연속 하한가를 기록했다. CFD 반대매매는 신용융자와 달리 증거금이 부족하면 즉각 실행된다. 전체 2억5000만원어치 샀다면 주식 가치가 1억9000원 밑으로 가면 반대매매가 자동으로 나간다. 주가가 24% 빠지면 반대매매가 나가는 구조다. 한꺼번에 매도 주문이 나가면서 시장에 소화되지 않으면서 반대매매가 이뤄졌을 땐 CFD 계좌 주인은 투자 원금은 물론이고 그 이상의 손실을 증권사에 물어줘야하는 상황이다.
역대급 주가조작을 설계한 유력 용의자인 라 대표가 자신도 500억원 손실을 본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배경이다. 그는 무더기 하한가 사태를 낳은 진짜 주범이 따로 있다면서 폭락 직전 다우데이터 지분 3.65%를 블록딜(대량매매)로 처분한 김익래 다우키움그룹 회장을 직접 겨냥했다. 주가조작 세력이 김익래 회장 겨냥하는 이유 다우데이터 CFD 반대매매 상황을 자세히 보면 전혀 근거 없는 얘기다. 다우데이타는 24일 4만3000원에 거래를 시작한 뒤 9시17분38초 주가 10% 급락에 따른 1차 변동성완화장치(VI) 발동으로 3분간 거래가 정지됐다. 4분 후 6% 추가로 더 빠지면서 2차 VI가 발동하자 CFD 반대매매 구간으로 진입했다. 결국 9시24분께 주가가 3만6400원(-15.35%)으로 내리자 CFD 자동 반대매매 계좌가 처음 발생하면서 일파만파로 소시에테제네랄(SG)증권 창구에서 매물이 쏟아졌다. 같은 포트폴리오를 CFD로 매입한 폰지 세력 계좌가 무더기로 반대매매 구간에 진입한 것이다. 다우데이터의 CFD 매수 가격은 4만7900원으로 추정된다. 실제 반대매매는 26일 1만원대에서 대부분 이뤄졌다. CFD 계좌 원금은 물론 추가 손실이 났다는 얘기다.
김 회장의 블록딜은 반대매매가 나오기 2거래일 전 이뤄졌다. 그는 글로벌 투자은행(IB) 모건스탠리를 통해 19일 장마감 후 다우데이터 지분 3.65%(140만주) 블록딜을 위한 수요예측을 실시하고 20일 개장 전 주당 4만3245원에 팔았다. 전날 마감 주가에 10.65% 할인율을 적용했다. 이틀 동안 블록딜 물량 일부가 소화되면서 다우데이터 주가는 21일 4만3550원으로 하락 마감했다. 김 회장의 블록딜 물량이 출회되면서 주가가 할인율만큼 10% 가량 빠졌지만 그 당시에는 반대매매 구간까지 괴리가 15% 이상 있었던 셈이다.
이번 폰지 주가조작의 CFD는 키움증권 등을 주로 이용했다. SG증권은 키움증권 등의 CFD 주문을 대행하는 외국계 증권사일 뿐이다. 폰지 계좌로 활용된 CFD 계좌가 무더기로 깡통 계좌를 넘어 마이너스 계좌가 되면서 키움증권이 1000억원 안팎의 손실을 떠안을 판이다. 한 펀드매니저는 "김 회장이 주범이라면 자신의 회사에 천문학적인 손실을 끼치는 것을 알면서 해사 행위를 했다는 의미"라며 “다우데이터로 엄청난 손실을 본 투자자와 달리 고점에서 팔았다는 도의적 책임론은 져야하지만 그 이상은 주가조작 세력들의 음모론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손실 봤다고 주가조작 사실 변하지 않아”삼천리 대성홀딩스 세방 서울도시가스 다우데이터 선광 하림지주 등 이번 CFD 작전 세력의 타깃이 된 자산주는 적게는 50%에서 많게는 17배까지 뛰었다. 지난주 대폭락 전에 대주주나 임직원이 장내매도한 사례가 적지 않았다. 김영민 서울도시가스 회장은 지난 17일 보유지분 11.54% 가운데 2.00%(10만주)를 고점에서 처분해 456억원을 손에 쥐었다. 지난달 김영민 회장 동생인 김영훈 대성그룹 회장이 이끄는 대성홀딩스도 서울도시가스 지분 2.40%(12만주)를 팔아 538억원을 현금화했다. 김진철 서울도시가스 대표와 임원들도 보유주식을 팔았다. 선광 주가가 저점 대비 10배 안팎 올랐던 작년 7~8월 심정구 선광 명예회장과 친인척이 지분 0.59%(3만8748주)를 장내에서 매도했다.
이번 사태에 늑장 조사에 나선 금융당국이 유력 용의자의 물타기에 휘둘리고 있다는 비판도 커지고 있다. 이복현 원장은 지난 28일 주가 조작 연관 기업 오너를 조사할 계획이 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지위 고하, 재산 유무, 사회적 위치 등과 무관하게 법과 원칙의 일관된 기준으로 신속 엄정 조사하겠다”고 답했다. 한 증권사 임원은 "당국이 시장에 쓸데 없는 음모론을 확신시키는데 일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손실이 봤다고 주가조작 행위 자체가 달라지는 건 없다는 게 증시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폰지 주가조작' 행위를 대규모 손실로 교묘히 덮을 수는 없다는 얘기다. 이들의 신종 CFD ‘폰지 사기’로 모래성이 한순간 무너지면서 선의의 투자자가 피해를 본 사실이 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한 증권사 대표는 “무리한 CFD 수급으로 주가를 끌어올린 모래성이 한순간에 무너지면서 수많은 피해자가 양산된 것이 자명한 데 엉뚱한 곳에서 원인을 찾으려는 고도의 물타기”라며 “하루 빨리 감독당국이 중심을 잡아줘야 한다”고 말했다.
조진형 기자 u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