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형 기업공개(IPO)가 호조세를 보이는 가운데 ‘업계 1호’ 상장사에 도전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1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와인 유통회사 나라셀라, 탄소배출권 기업 에코아이, 민간 기상정보업체 케이웨더 등이 업계 최초로 상장을 추진 중이다. 에코아이와 케이웨더는 지난 3월 한국거래소에 상장 예비 심사를 청구하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으며, 최근 증권신고서를 제출한 나라셀라는 조만간 기관투자가를 대상으로 수요예측을 시작한다.
이들 모두 주식시장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새로운 업종의 기업이다. 최근 2년간 코로나19 직후 풍부한 유동성을 기반으로 성장한 스타트업이 증시 입성에 성공하면서 중소기업들이 상장을 추진할 동력을 얻었다는 게 증권가의 분석이다.
업계는 2021년 금융 플랫폼 카카오페이와 중고차 거래 플랫폼 케이카, 수제 맥주 제조사 제주맥주가 업계 최초로 상장한 것이 신호탄이 됐다고 보고 있다. 지난해 폰트 개발사 산돌, 프로토타입 제조사 모델솔루션, 펫푸드 업체 오에스피가 증시에 입성했고 올해 초엔 유아용품 기업 중 최초로 꿈비가 코스닥 상장사에 이름을 올렸다.
IB업계 관계자는 “예전엔 상장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됐던 적자 플랫폼 기업들이 주식시장에서 성장성을 인정받는 것을 보고 다양한 분야의 중소기업이 IPO를 시도하고 있다”며 “업계 최초 상장사가 나오면 관련 업종의 후발주자들도 기업공개에 나서면서 IPO 시장의 저변이 확대됐다”고 말했다.
다만 업계 최초 상장 기업은 적정 기업가치를 평가하기 어렵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된다. 상장을 추진하는 기업은 같은 업종에서 경쟁하는 상장 기업의 실적과 주가를 토대로 기업가치를 산정하는데, 비교 대상이 없기 때문이다.
와인 유통사 나라셀라는 명품 브랜드 루이비통을 보유한 LVMH(루이비통모에헤네시)와 견줘 기업가치를 책정했다가 비판받고 비교기업군을 다시 선정했다. 국내 금융 플랫폼 1호 상장에 도전했던 카카오페이는 ‘매출 대비 기업가치(EV/Sales)’ 방식으로 적정 가치를 산출하기 어렵다며 사업 초기 기업과 성숙기에 접어든 비교기업 간 성장률 격차를 감안한 ‘성장률 조정 EV/Sales’ 방식을 사용해 논란이 됐다.
이 방식은 국내에서 생소한 평가 방식으로 공모가를 부풀렸다는 지적을 받아 공모 일정이 두 차례 연기됐다. 카카오페이는 2021년 11월 상장 후 주가가 공모가 9만원의 두 배 이상 치솟았으나 현재 주가가 5만원대로 떨어졌다.
일각에서는 업계 최초 상장 기업들의 기업가치를 평가하기 위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한 투자운용사 관계자는 “게임회사 크래프톤이 상장할 때 디즈니를, 엔터테인먼트회사 하이브가 네이버와 카카오를 비교기업으로 선정했기 때문에 와인 유통사가 루이비통을 기준으로 기업가치를 평가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 벌어진 것”이라며 “기업의 성장 잠재력과 시장성을 반영할 수 있는 합리적인 기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석철 기자 dolso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