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잘 혼자 여행을 다닌다. 겁 많던 내가 혼자 여행을 즐기게 된 건 2017년 혼자 떠난 한 달짜리 유럽 여행 덕분이었다. 여행 3일 만에 캐리어를 통째로 잃어버렸는데, 절망을 넘어서는 해방감에 남은 여행을 자유롭게 즐겼었다. 그 이후 세계 각국을 혼자 여행하니 주변 지인들로부터 “혼자 여행하면 심심하지 않냐”는 걱정과 질문을 많이 듣고 있다.
최근 일본 도쿄 여행도 걱정이 없었다. 엔데믹으로 소셜미디어 피드가 친구들의 여행사진으로 가득 찰 즈음, 3년간 참아왔던 해외여행의 욕구를 빠르게 실행했다. 몇 달간 격무에 시달리다가 맞이한 도쿄는 지난 유럽 여행처럼 해방감을 가져다줄 것만 같았다. 만개한 벚꽃 속 도쿄 맛집과 미술관은 상상만으로 설렜다.
그런데 여행 초반부터 당황했다.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화려한 벚꽃을 봐도 아무 감흥이 느껴지지 않았다. 하루 종일 호텔 밖으로 나가지 않고 멍하니 창밖을 내다보거나 글을 썼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 직업으로 살다보니 번아웃이 왔나 싶었는데, 생각보다도 더 정신적 에너지가 방전된 상태임을 깨달았다. 지금 이 순간 나에게 필요한 것은 맛보고 즐기는 여행이 아닌 내면의 공허함을 채우는 무언가였다.
시간이 더 지나니 잊고 있던 기억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바로 내가 좋아하는 행동들이었다. 이를테면 화장 안 하기, 동네 마트 구경하기, 음악 들으며 밤 산책 하기 같은. 별것 아닌 행동 같지만 바쁜 일상에서 떠올리기 쉽지 않았었다. 이렇게 간단한 몇 가지만으로 기분이 좋아지면서 허탈하기까지 했다. 그렇게 남은 기간동안 하나씩 실천해보며 지금 나에게 필요한 형태의 여행을 찾아갔다.
이렇게 혼자 여행이란 나 자신과 대화하는 시간이다. 우리의 일상은 많은 실타래로 얽힌 인간관계부터 다음달 청구될 신용카드값까지 나의 내면 이외에도 신경 쓸 요소가 가득하다. 나는 일상에서 잊고 있던 일을 기억해내고 생각지도 못했던 나다운 모습을 찾기 위해 혼자 여행을 택했다. 이번 도쿄 여행에서의 가장 큰 수확은 그 무엇도 아닌 잊고 살던 나다움이었다.
혼자 여행은 누군가와 함께하는 여행과 목적이 다르다. 흔히들 말하기를, 혼자 여행하면 사진 찍어줄 친구가 없을뿐더러 한 번에 다양한 음식을 주문하지 못한다는 아쉬움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2명이든 3명이든 누군가와 함께한 여행은 그 사람과의 상호작용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그와 나누었던 대화와 감정이 여행의 추억이 된다. 반면 혼자 여행은 오로지 당시 나 자신의 감정 자체가 여행의 잔상이 된다.
따라서 가장 행복한 여행을 하는 방법은 어딜 가고 누구와 가느냐가 아니다. 중요한 건 지금 나에게 필요한 여행이 무엇인지 스스로 인지하는 일이다. 스스로에 대한 파악부터 서툴다면 나 자신과의 대화를 시도할 수 있는 혼자만의 여행을 떠나보기를 바란다.
생뚱맞게도 혼자 여행의 매력은 여행 후 일상으로 복귀한 순간 더 크게 다가온다. 일과 친구가 많은 일상에 복귀하자마자 나와의 대화에 집중하기 어려워짐을 체감하게 되니 말이다. 그렇게 또다시 혼자만의 여행이 그리워질 것이다. 다가온 5월 첫 주의 황금연휴에도 혼자 여행을 떠날 궁리를 하고 있다. 혼자 여행 가서 심심하지 않겠냐는 지인들의 연락을 또 받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