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 이재용의 시스템반도체 '133조' 투자 결단 통했다 [황정수의 반도체 이슈 짚어보기]

입력 2023-04-30 12:41
수정 2023-04-30 15:12

3.5대 1. 10년 이상 이어지고 있는 시스템반도체(메모리반도체를 제외한 제품과 서비스)와 메모리반도체 시장의 규모 차이다. 올해도 상황은 비슷하다. 시장조사업체 가트너는 2023년 전 세계 시스템반도체 시장 규모를 620조원, 메모리는 179조원으로 전망했다.

메모리 1위 삼성전자의 오랜 고민은 '시스템반도체 시장을 놓치고 있다'는 것이었다. 결국 삼성의 총수인 이재용 회장이 2019년 결단을 내렸다. 그해 4월 이재용 당시 삼성전자 부회장은 "133조원을 투자해 2030년 시스템반도체 세계 1위를 달성하겠다"는 내용의 '비전 2030'을 공개했다. 4년이 지난 현재, 업계에선 "삼성이 꾸준히 성과를 내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삼성전자 시스템반도체 매출 30조원 달성30일 삼성전자에 따르면 지난해 시스템반도체 매출은 29조9300억원으로 확인됐다. 전년(22조7900억원) 대비 31.3% 급증했다. 비전 2030 발표 전인 2018년 대비해선 115.2% 증가했다.

매출 증가세를 기록할 수 있었던 데엔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사업의 역할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파운드리는 공장이 없는 팹리스(반도체 설계전문 기업)의 주문을 받아 칩을 제조해주는 사업이다.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는 지난해 분기마다 '최대 실적'을 기록하며 처음으로 연간 20조원 넘는 매출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지난해 4분기 기준 15.8%로 세계 2위다. 세계 1위 대만 TSMC(58.5%)와의 격차가 작지 않다. 하지만 TSMC가 1987년 창업 이후 36년째 파운드리에만 집중한 것을 감안할 때 삼성전자가 '선전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파운드리 수주잔액 100조원 넘어...TSMC와 치열한 기술경쟁최첨단 공정 기술력과 관련해선 삼성전자가 업계를 이끌고 있다. 2019년 4월 세계 최초로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이용한 7nm(나노미터, 1nm=10억분의 1m) 파운드리 공정을 시작한 기업은 삼성전자다. 지난해 6월에도 TSMC를 제치고 신기술인 '게이트올어라운드(GAA)' 적용한 3nm 공정에서 칩을 양산했다.

일각에선 삼성 파운드리의 상대적으로 낮은 수율(생산품에서 양품이 차지하는 비율)을 지적한다. 삼성전자에선 "초기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지금은 3nm, 4nm 모두 정상 수준으로 올라왔다"고 설명한다.

고객사도 늘고 있다.구글은 고성능컴퓨팅(HPC)칩 양산을 삼성 3nm 공정에 맡긴 것으로 알려졌다. 주요 자율주행용 반도체 개발사들도 삼성의 4·5nm 공정을 활용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삼성 파운드리의 수주잔액은 100조원 이상인 것으로 전해졌다. 2억화소 이미지센서 개발...'엑시노스' 부활 노려팹리스 역할을 하는 시스템LSI사업부도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카메라의 눈 역할을 하는 반도체인 '이미지센서'와 관련해선 일본 소니에 이어 세계 2위다. '2억 화소' 제품을 세계 최초로 개발, 샤오미 등 중국 스마트폰업체에도 납품했다.

스마트폰에서 중앙처리장치(CPU) 역할을 하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엑시노스'와 관련해선 반전을 노리고 있다. 기본적으론 중저가 스마트폰용 AP 납품을 늘리며 점유율을 높이는 전략을 구사 중이다.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삼성전자의 모바일AP 출하량은 전년 동기 대비 15% 증가한 1910만개를 기록했다. 주요 AP 업체 중 유일하게 출하량이 늘었다. 올 하반기엔 갤럭시S24 등 프리미엄 스마트폰용 AP 납품을 늘리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차량용 반도체 시장도 적극 공략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전장용 통합칩셋(SoC·한 개의 칩에 다양한 기능을 넣은 반도체)인 ‘엑시노스 오토’ 시리즈와 이미지센서 등도 개발, 생산해 폭스바겐, 아우디 등에 납품 중이다. "인력 확보 주력하면서 중장기 경쟁력 강화해야" 2030년 시스템반도체 세계 1위 달성을 위한 과제도 적지 않다. 첫 번째로는 인력 충원 문제가 꼽힌다. 파운드리, 시스템LSI 모두 인력이 경쟁사로 꼽히는 TSMC, 퀄컴 등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매년 20조원 이상 필요한 시스템반도체 투자 재원도 장애물 중에 하나로 거론된다. 최근 D램 불황, 메모리 경쟁사의 추격 등의 이유로 삼성전자가 '메모리반도체에서 번 돈을 시스템반도체에 투입하는' 구조를 유지하는 게 어려워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 반도체 전문 교수는 "사업의 기초 체력을 튼튼하게 다지면서 중장기 경쟁력을 강화하는 전략이 필요하다"며 "파운드리와 모바일·차량용 AP, 이미지센서 등에서 안정적인 2위만 유지해도 성과를 내는 것"이라고 조언했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