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회사 실적이 왜 좋아지는데?...KT&G의 반전 [안재광의 대기만성's]

입력 2023-04-28 14:56
수정 2023-09-06 15:45

▶안재광 기자
담배 피우는 사람이 정말 적어졌어요. 우리나라 19세 이상 성인의 흡연율이 2021년 20%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이 수치가 10여년 전에는 30%에 육박했거든요. 매년 자꾸 떨어지고 있으니 몇 년 뒤면 10% 아래로 내려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특히 남자들의 흡연율 감소가 두드러지는데. 10년 전에 50% 가까이하다가 지금은 31%까지 확 떨어졌어요. 여자분들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큰 차이가 없고요.

한국만 흡연율이 떨어지는 건 아니고. 세계적인 현상인데요. 이게 2019년 기준인데. 이때도 OECD 국가 중에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같은 나라는 10% 미만이고. 미국도 남성 흡연율이 10%에 불과해요. 한국의 3분의 1 수준이죠. 튀르키예, 라트비아, 그리스 이런 나라들이 그나마 한국 남자들과 상대가 되네요.

담배를 이렇게 덜 피우면, 담배 회사는 뭐 먹고 사나 싶은데. 그런데 너무나 놀랍게도 담배 회사 실적은 계속 늘고 있습니다. KT&G의 매출은 거의 매년 사상 최고치를 새로 쓰고 있고, 영업이익도 1조원 넘게 나고 있습니다. 뭐로 이렇게 돈을 많이 버는지.이번 주제는 흡연율 떨어져도 돈 잘 버는 KT&G 입니다.

KT&G는 1987년 정부가 세운 회사에요. 그전에는 아예 정부 안에 있었는데 88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공기업으로 독립했어요. 당시 이름은 한국전매공사였습니다.

아니, 이름이 이게 뭐야. 정부 안에 있을 때 '전매청'이란 이름으로 있어서 이런 '구린' 이름이 됐다고 합니다. 자기들도 이상했는지 곧바로 한국담배인삼공사로 이름을 바꿨고, 2002년 완전 민영화하면서 지금의 이름이 됐습니다.

민영화는 됐지만, 공기업 느낌이 있죠. 최대주주가 지분은 많지 않지만 어쨌든 국민연금이고. 약 7% 갖고 있어요. 정부 소유인 IBK기업은행 지분도 7% 가까이합니다. 자사주가 KT&G 지난 사장 인사 때 대통령실과 기획재정부가 개입한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어요. 정부가 아니라곤 해명했지만, 이건 사실 공공연한 비밀 같은 거라.

KT&G 뿐 아니라 주인 없는 기업으로 불리는 민영화 된 포스코, KT도 비슷한 처지죠. 어쨌든 정부가 직접 보유한 지분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공기업 아닙니다.

KT&G란 이름은 한국담배인삼공사의 영어식 표현 Korea Tobacco and Ginseng의 약자를 그대로 가져와 쓴 것 같은데, 회사 측은 Korea Tomorrow and Global의 약자라고 주장합니다. 이것도 공공연한 비밀 같은 것이고. 타바코, 담배를 내세우긴 좀 그러니까요. 뭐, 그러거나 말거나. 담배가 주력인 건 사실입니다.

지난해 전체 매출이 5조8000억원가량 했는데. 이 가운데 61%인 3조5000억원가량을 책임져 줬습니다. 인삼 사업도 비중이 꽤 되는데. 인삼을 포함한 건강기능 식품의 작년 매출은 1조30000억원 가량. 매출 비중은 23%.

어쨌든 담배가 매출의 대부분인데. 흡연율 떨어져서 실적이 나빠지겠네. 이렇게 생각 당연히 들잖아요. 그런데 그렇지 않아요. KT&G 매출은 꾸준히 늘고 있습니다.

2014년 4조원을 조금 넘겼던 매출이 2020년 처음 5조원을 넘겼고, 지난해에는 6조원에 육박했습니다. 영업이익도 꾸준히 1조원을 넘기고 있죠. 이익률이 높을 땐 30%가 넘었어요. 지금은 조금 줄어 21% 수준이지만. 제조업이 10% 넘기는 게 쉽지 않은데. 엄청 알짜 사업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회사 측은 한 발 더 나가 2027년에 매출 10조원을 넘기겠다. 이런 비전까지 제시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이익 20% 내면 2조원인데. 과장된 것 아닌가.

KT&G의 믿는 구석. 우선, 수출입니다. KT&G도 흡연율 감소, 당연히 대비하고 있었어요. 한국에 머물면 망한다. 수출해야 산다. 이런 생각이 강했죠. 현재 회사를 이끄는 백복인 사장이 해외 개척 실무를 했던 분이에요. 튀르키예 법인장까지 했어요. 아까 튀르키예의 높은 흡연율 보셨죠.

KT&G가 수출을 얼마나 많이 하냐. 일반 담배, 이걸 궐련이라고 하는데. 지난해 이 궐련을 해외에서 판 게 1조원어치가 넘습니다. 해외 매출 비중이 30%에 달해요. 이란, 튀르키예, 인도네시아, 러시아 같은 국가에는 공장까지 갖추고 있어요.

해외에서 가장 인기를 끄는 KT&G 담배, 바로 '에쎄' 입니다. 이게 한국에선 아재 담배로 이미지가 박혀 있죠. 일반 담배보다 훨씬 가느다란 가녀린 담배 컨셉인데. 아재가 왜 이걸 피냐. 끊긴 끊어야 하는데 잘 못 끊겠고. 담배 계속 피우자니 건강이 신경 쓰이고. 그래서 얇은 걸로 순하게 피느라 에쎄 많이 사요.사실 에쎄는 이탈리아어로 '그녀들'이란 뜻이거든요. KT&G가 여성 흡연자 공략을 위해 만든 게 에쎄인데. 아재 담배가 되었다는 게 모순이죠. 근데 이 에쎄가 중동이나 동남아에선 고급 담배로 인식이 됐더라고요. 한국에서도 과거 말보로 피면 좀 있어 보였는데. 이 나라에선 에쎄 피면 좀 있어 보이는.

KT&G가 100개국 넘는 나라에 수출하는데. 아직 못 들어간 나라가 바로 중국입니다. 중국은 인구가 14억명이나 되고, 흡연율도 엄청 높고, 독한 담배 많이 피우고, 아직도 흡연에 굉장히 관대한데요. 중국 시장만 뚫리면 진짜 대박이 날 것 같은데. 중국은 정부에서 담배 시장을 통제하기 때문에 KT&G가 들어갈 여지가 아직은 별로 없어 보입니다.

KT&G의 믿는 구석 두 번째는 전자담배에요. 요즘 일반 담배 대신 전자담배 피는 분 많이 보이죠. 전자 담배 한번 피면, 일반 담배는 못 피우겠다는 분 많아요. 이 전자담배, 굉장히 오래된 것 같지만, 한국에 나온 지 6년밖에 안 됐습니다. 그런데 어느덧 시장 침투율이 17%를 넘었어요. 100명이 담배 피우면 17명은 전자담배 핀다는 얘기죠.

참고로 담배 업계에선 전자담배란 표현 안 써요. KT&G는 NGP, Next Generation Products로 부릅니다. 사명도 그렇고, 제품 이름도 그렇고 담배라고 하는건 금기예요.이 전자담배 시장에서 KT&G의 국내 시장 점유율은 50%에 육박해요. 사실 국내 전자담배 시장은 미국의 필립모리스가 꽉 잡고 있었죠. 말보로로 유명한 회사죠. 아직도 기억나는데. 필립모리스가 '아이코스'란 전자담배를 한국에 2017년에 처음 내놨는데, 이거 사려고 사람들이 편의점에서 번호표 뽑고 줄을 섰습니다. BAT, 브리티시 아메리칸 타바코의 '글로'가 그 다음에 나왔는데, 이건 인기가 그다지 없었어요.

KT&G는 이 회사들 보다 늦게 '릴' 이란 전자담배를 내놨는데, 이걸 다 따라 잡은 겁니다. 시장 점유율 보면 2018년만 해도 16% 수준에 불과했던 게 작년 기준 47%까지 상승했어요.

전자담배는 몸통에 해당하는 본체와 이 본체에 끼우는 손가락 두 개 마디 정도의 담배 스틱으로 이뤄지는데요. 점유율은 이 담배 스틱 기준입니다. 사실 스틱을 잘 팔아야 장사가 잘되는 것이고요. 본체는 거의 원가에 뿌려요. 콘솔 게임기를 원가에 주고 게임 팔아 돈 버는 것과 비슷해요.

전자담배가 얼마냐 많이 팔렸냐. 지난해 매출이 8763억원가량 했습니다. 감이 잘 안 오시죠. 증가율로 보면 감이 확 옵니다. 전년 대비 73%나 늘었어요. 팔린 개수도 중요한데요. 106억개비. 전년 대비로 48%나 증가했어요. 이쯤 되면 담배는 사양 산업이 아니라, 성장 산업으로 봐도 될 것 같아요.

이 전자담배 한국에서만 팔리는 게 아니죠. 해외에서도 많이 팔립니다. 놀랍게도 경쟁사인 필립모리스가 팔아주고 있습니다. 필립모리스는 2020년 초에 KT&G와 3년간 공급계약을 체결했는데, 계약이 끝나자 곧바로 15년을 연장했어요.

필립모리스는 앞서 전자담배 아이코스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고 했잖아요. 이후에 KT&G에 밀리긴 했지만, 한국에선 점유율이 43%로 KT&G의 릴과 엇비슷하거든요. 아이코스로 전자담배 천하통일 하긴 글렀구나. 그럼 우리 편으로 만들자,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KT&G도 처음에는 반신반의했을 것 같아요. 같은 편 하자 해놓고 아이코스만 열심히 팔고, 릴은 좀 덜 팔아서 죽이는 전략 아닐까.

그런데 너무너무 잘 팔아주고 있으니. 15년 연장 계약할 만 했던 것 같아요. 안전장치도 마련했더라고요. 우선 2025년까지 최소 160억개비 판매를 보증받았습니다. 연평균 대략 20% 성장률로 계산하면, 15년간 누적으로 31조원 매출이 나온다, 이런 분석도 있더라고요.

KT&G가 믿는 구석이 또 하나 있어요. 이건 좀 의외인데. 부동산 개발 사업입니다. 작년 매출 비중을 보면, 10%에 해당하는 5900억원이 부동산 개발에서 나왔어요.

이게 사연이 좀 있습니다. KT&G는 전매청 시절부터 전국 주요 거점 도시마다 엄청나게 넓은 창고, 공장을 보유하고 있었는데. 공장을 도시 외곽으로 이전하거나 물류센터를 통합하면서 노는 땅이 많아졌어요. 이걸 그냥 팔기는 좀 아까우니, 이 땅에 아파트나 오피스텔 같은 걸 지어서 팔아보자. 그렇게 개발된 부지가 많아요. 대표적인 곳은 대구역 인근의 대구역 센트럴자이, 그리고 수원의 화서 파크 푸르지오.

화서 파크 푸르지오 바로 옆에는 신세계의 초대형 쇼핑몰 스타필드도 들어설 예정인데. 이 땅도 KT&G 겁니다. KT&G가 스타필드 수원의 지분 절반을 갖기로 했어요. 스타필드 수원이 장사해서 돈 잘 벌면 절반은 KT&G가 가져간다는 얘깁니다.

스타필드 수원은 스타필드 고양과 크기가 엇비슷한데. 스타필드 고양의 작년 순이익이 210억원쯤 했습니다. 스타필드 수원이 대략 연간 200억원 순이익 낸다고 가정하면, 그 절반인 100억원이 따박따박 KT&G에 떨어지는 겁니다.

부동산 개발은 부동산 경기에 따라, 또 노는 땅이 얼마나 많으냐에 따라 실적이 왔다 갔다 하는데요. 사실 KT&G의 노는 땅은 대부분 소진이 됐다고 합니다. 그런데, 부동산 개발 사업하면서 돈 말고 쌓인게 하나 더 있죠. 바로 개발 노하우입니다.

주택과 상업용 부동산 개발 노하우가 상당해서 부동산 보는 눈이 좋아요. 딱 보면 이게 될 사업인지 아닌지 안다는 얘깁니다. 여기에 돈까지 많잖아요. 매년 1조원이 이익으로 쌓이는데. 이 자금과 부동산 개발 노하우를 활용하면 앞으로도 좋은 사업을 발굴할 가능성이 높습니다.회사 측은 당장 올해도 부동산 개발 부문 매출을 6000억원으로 잡아놓고 있어요. 일회성으로 나오는 매출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매출이다.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KT&G는 증시에서 배당주로 통합니다. 담배 산업 성장 솔직히 잘 안될 것 같고. 담배가 수익성은 좋다니까 현금은 잘 나온다. 그 돈 쌓아뒀다가 주주들에게 배당 많이 한다. 이렇게 단순하게 보는 경향이 있어요.실제로 배당 많이 줍니다. 2022년 실적 결산 기준으로 주당 5000원 배당했어요. KT&G 주가가 작년 말에 9만원 안팎 했는데. 9만원 주가 기준, 시가 배당률이 5.5%였어요. 은행 이자보다 훨씬 많이 줘요. 그래서 연말 배당 시즌만 되면 주가가 오르는 경향이 있습니다. 작년에도 연말에 큰 폭으로 상승했는데. 작년에는 배당 이슈에 다른 이슈까지 겹쳐서 더 오르긴 했어요. 행동주의 펀드. 그러니까 주식만 사는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경영활동에 개입하는 펀드들이 주주제안을 했거든요. 배당 더 늘려라, 자사주 매입해라, 인삼 사업을 별도로 떼어내 상장시켜라 등등.

KT&G는 행동주의 펀드의 타깃이 종종 됩니다. 최대주주가 별도로 없어서 우선 만만하고. 이익은 그런데 엄청나게 잘 내고. 내부에 쌓아 놓은 돈도 많아서. 이거 나눠 먹으려고 달려드는 펀드들이 꽤 있습니다. 2006년에도 칼 아이칸이란 펀드가 경영권을 위협한 적이 있었어요.

KT&G 경영진도 언제든 경영권 위협이 들어올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주주 정책에 엄청나게 신경씁니다. 순이익은 큰 차이가 없는데 배당금은 계속 늘려왔어요. 2014년 3400원 하던 게 2017년 4000원으로 늘었고, 이게 5000원까지 상승한 겁니다. 앞으로도 배당이 늘 가능성 높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전자담배 같은 신규 사업이 뒷받침되고. 중국인 관광객 감소로 고전 중인 홍삼 브랜드 '정관장'이 조금만 더 잘 팔려 준다면. 성장성도 생길 것 같아요.

KT&G의 병 주고 약 주고 사업, 계속 성장할 수 있을지 눈여겨보겠어.

안재광 기자 ahn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