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 위해 쓴 교향곡…베토벤은 왜 갈기갈기 찢어버렸나

입력 2023-04-27 18:15
수정 2023-04-28 02:44
“그 역시 평범한 인간에 불과했군. 이제 그놈 또한 인간의 권리를 짓밟고 자신의 야망만 채우는 폭군이 되겠군.”

1804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황제로 즉위하자 베토벤은 자신의 악보 표지를 찢어버리며 이렇게 소리쳤다. ‘보나파르트’라는 문구가 선명히 적힌 그의 세 번째 교향곡 표지는 그렇게 바닥에 던져져 한참을 나뒹군 뒤에야 비로소 움직임을 멈췄다. 부조리한 세상을 변화시킬 영웅이라 믿었던 보나파르트에 대한 베토벤의 존경심이 무너져내리는 순간이었다.

그렇다. 애초에 베토벤 교향곡 3번 ‘영웅’(에로이카)은 보나파르트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쓰인 작품이었다. 지독한 공화주의자로 유명했던 베토벤은 프랑스 혁명의 계승자를 자처한 보나파르트가 군주제에 맞서 유럽의 민중에게 자유와 평등을 가져다줄 인물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랬던 그가 자신의 손으로 왕관을 머리 위에 올렸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베토벤은 크게 좌절했다. 그 즉시 자신의 곡에서 보나파르트의 흔적을 지워버린 베토벤은 이후 작품의 새 제목으로 ‘영웅’이란 문구를 적어넣었다. 특정 개인이 아니라 세상을 구원할 만한, 시대를 초월할 만한 이상적인 존재에게 이 곡을 바치겠다는 의미였다.

현재는 베토벤 교향곡 3번 ‘영웅’이라고 하면 ‘운명’ ‘합창’ 교향곡에 비견할 만한 걸작으로 여겨지지만, 1805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초연할 당시에는 작품에 대한 반응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당시 청중이 느끼기엔 너무나 난해하고도 생소한 형태의 음악이었기 때문이다. 우선 작품의 연주 시간이 그 시대 평균 교향곡 길이의 두 배에 달하는 50분이라는 점에서 부담스럽다는 평이 많았다. 인간이 느끼는 감정을 전부 토해내듯 강렬한 악상으로 음악을 전개하는 그의 독창적인 표현법도 당시 청중에게는 낯선 것이었다.

시원찮은 반응과 일부의 혹평에도 베토벤은 작품의 단 한 부분도 고치지 않았다. 심지어 그는 생전에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교향곡으로 3번 ‘영웅’을 여러 번 거론하면서 작품에 대한 자부심을 강하게 드러냈다. 결과적으로 베토벤의 믿음은 옳았다. 후세에 그의 교향곡 3번은 ‘하이든, 모차르트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나 베토벤만의 새로운 어법을 창조해낸 시작점’이라는 극찬을 받으며 희대의 명작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E♭장조 교향곡인 이 작품은 강렬한 두 개의 화음으로 힘찬 시작을 알린다. 첼로가 묵직한 음색으로 주제 선율을 이끌면 이내 목관악기와 바이올린이 밝은 음색으로 주제 선율을 확장하는데, 이때 금관악기와 팀파니의 장대한 울림이 덧입혀지면서 영웅에 대한 베토벤의 강한 열망을 토해낸다. 1악장에서 두드러지는 스포르찬도(하나의 음표 또는 화음에 돌연히 악센트를 붙여 연주)와 반음계 진행은 베토벤 특유의 웅장함을 더욱 극적으로 펼쳐낸다.

‘장송 행진곡’으로 유명한 2악장에서는 악곡 전반에 깔린 저음역의 어둡고도 침울한 선율이 한 걸음 한 걸음 힘겹게 전진하는 영웅의 무거운 발걸음을 드러낸다. 악곡 중간에 등장하는 선명하고도 맑은 오보에, 플루트 선율은 영웅이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평화롭고 아름다운 순간을 회상하는 장면을 담은 듯 아련한 인상을 남긴다. 3악장은 스타카토(각 음을 짧게 끊어서 연주)로 이뤄진 선율과 대범한 악상 변화에서 역동적인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악곡이다. 특히 호른의 광대한 선율은 오로지 승리를 위해 앞으로 나아가는 군대의 행진을 표현해내듯 경쾌하다.

첫 소절부터 빠른 속도로 음표를 떨어뜨리며 묘한 긴장감을 유발하는 마지막 악장. 피치카토(현을 손끝으로 튕겨서 연주)로 이뤄진 선율과 간결한 리듬, 거대한 악상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면서 마치 영웅의 탄생을 축하하는 듯한 환희를 펼쳐낸다. 활기찬 분위기 속에서 등장하는 오보에, 클라리넷, 바순의 풍성하면서도 따뜻한 앙상블에서는 베토벤의 깊은 서정성을 마주할 수 있다. 악곡의 끝에 다다랐을 무렵 호른과 트럼펫의 울림을 신호탄으로 질주하는 현악기와 목관악기의 열정적인 선율, 순식간에 음량을 키우며 만들어내는 호화스러운 색채에 온 감각을 집중한다면 베토벤이 표현하고자 한 영웅의 장대한 서사시를 온전히 맛볼 수 있다.

김수현 기자 ksoo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