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은 양의 음식을 천천히 즐기는 '소식(小食)'이10~20대 여성들 사이에서 '인기 다이어트 비법'으로 급부상했다.
전문가들은 지나친 소식으로 다이어트를 지속하는 것은 섭식장애 등 질병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우려했다.
최근 유튜브, SNS 등에서는 소식 다이어트가 인기를 끌면서 관련 영상을 올리는 10~20대 여성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기존에는 보는 이의 식욕을 자극하는 이른바 '폭풍 먹방', 고가 명품을 과시적으로 소비하는 '플렉스(FLEX)' 등이 한동안 유행했다. 하지만 이에 피로감을 느낀 소비자들은 소식으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
김헌식 대중문화 평론가는 "그동안 우리 사회가 많이 먹는 것을 부각하거나 과식을 유도하는 경향이 많았다"면서도 "최근에는 소식 관련 콘텐츠가 급부상하면서 소식을 지향하는 이들을 겨냥한 다양한 콘텐츠와 상품들이 끊임없이 나오는 추세"라고 말했다.
소식 다이어트를 즐기는 이들은 온라인상에서 '소식좌(소식+1인자를 뜻하는 '좌'의 합성어)'로 불린다. '소식좌'는 지난해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유행을 타기 시작했다. 신한카드가 소셜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1월 대비 같은 해 9월 '먹방' 언급량은 34% 감소했지만, '소식좌' 언급량은 4766% 폭증했다.
이는 방송 프로그램에서 적게 먹는 연예인들이 스포트라이트 받으면서 소식이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잡힌 영향이 크다. '소식 먹방'의 대가로 알려진 방송인 박소현과 가수 산다라박은 유튜브 채널 '흥마늘 스튜디오'의 웹 예능 '밥맛없는 언니들'에 '고기 세 점 먹방', '계란 반 개 먹방' 등의 영상을 올려 큰 화제가 됐다. 소식좌 열풍이 불기 시작했던 8개월 전쯤 게시된 인기 영상은 벌써 500만회를 훌쩍 넘겼다.
방송인들의 소식좌 관련 콘텐츠의 인기에 힘입어 10~20대들도 따라서 '소식좌 다이어트', '소식좌 챌린지(도전)' 등의 콘텐츠들을 쏟아내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소식으로 40kg대 유지하는 법', '소식좌 박소현님 다이어트하고 최저 몸무게 찍었다', 날씬한 사람들의 비밀, 소식좌 다이어트 꿀팁(조언)' 등의 영상이 눈길을 끈다.
소식좌 다이어트에 이어 일부 10~20대 여성들 사이에서는 극도의 마른 몸을 추구하는 '초절식 다이어트'도 유행이다. 미디어를 통해 마른 여자 연예인을 접하며 그들과 같이 되고 싶다는 이유에서다. 마른 몸의 멤버가 많은 그룹 아이브와 뉴진스 등이 인기를 얻으면서 깡마른 여성이 아름답다는 인식도 확산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소식을 위해 먹는 양을 갑자기 줄이거나 무리하게 단식하고 잘못된 방법으로 다이어트를 할 경우, 오히려 기초대사량이 낮아지고 근육이 줄어들어 건강에 위험할 수 있다고 주의를 당부했다. 또 먹는 양을 줄이면서 포만감을 높이기 위해 과다하게 단백질 위주로 식단을 짜게 되면, 신장질환 등의 발생률이 증가하고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아질 수 있다.
'초절식' 등 과도한 소식은 거식증 등 섭식장애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섭식 장애는 정신적인 문제로 인해 음식 섭취에 장애가 생기는 질환을 뜻한다. 대표적인 질환으로 거식증(신경성 식욕부진증)과 폭식증(신경성 대식증)이 있다.
실제로 소식 다이어트의 중심에 서 있는 젊은 여성 중에서도 미디어에 영향을 받기 쉬운 10대들이 섭식장애를 앓고 있는 비율이 가장 높다는 통계 결과도 나왔다.지난 1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섭식장애를 앓는 환자를 조사한 결과 경성 식욕부진증(거식증)으로 병원을 찾은 환자 가운데 특히 10대 청소년은 25%(418명)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최근 5년간 70대 이상을 제외하고 가장 진료 인원이 많은 성별·연령 집단은 10대 여성(총 1588명)일 정도다.
정찬승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이사는 "(무작정 소식 다이어트를 따라 하는 것 보다는) 균형 잡힌 식단과 규칙적인 식사를 하는 방법을 만들어야 한다"며 "정상적인 식사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면서 식사 일기 작성, 식이장애 클리닉 치료 등을 추천했다.
전문가들은 소식 트렌드를 따라가더라도 '건강하게 소식하는 법'으로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예컨대 평소 음식을 섭취하는 양에서 하루 500~1000kcal 정도를 덜 섭취하더라도, 고단백·저칼로리·저염식 식단으로 먹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다. 무조건 적게 먹는 것이 아니라 음식을 골고루 내 몸에 꼭 필요한 정도의 열량만큼만 먹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건강에 무리가 가지 않을 정도로 소식을 실천하면 분명히 좋은 점도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식사량을 부족한 듯 먹고 식사 시간을 적어도 20분 이상 걸리도록 천천히 먹으면 '포만중추'가 자극돼 적은 양으로도 포만감을 느끼게 된다. 지방과 콜레스테롤도 감소하게 된다. 또, 적게 먹으면 탄수화물 섭취가 줄고 몸에 지방이 축적되는 것을 예방하게 돼 면역력이 높아진다는 장점도 있다.
한편 지난 18일(현지시간) 미국 매체 CNN에 따르면 유튜브는 최근 1020 건강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세계 최대 동영상 플랫폼 유튜브가 앞으로 섭식 장애 관련 콘텐츠를 금지한다고 밝혔다.
유튜브는 섭식 장애 콘텐츠를 다루는 방식에 대한 변경 사항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오랫동안 섭식 장애를 미화하거나 조장하는 콘텐츠를 삭제해 왔으며 앞으로 새 가이드라인에 따라 사용자들이 따라 하거나 유도할 수 있는 식사 후 구토 혹은 극단적인 칼로리 계산과 같은 행동이 포함된 콘텐츠가 금지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세린 한경닷컴 기자 celin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