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실세 부처 '기재부·행안부'의 불편한 동거 [관가 포커스]

입력 2023-04-27 13:22
수정 2023-04-27 13:31


기획재정부는 18개 정부 중앙부처 중 최고의 ‘실세 부처’로 불린다. 기재부가 쥔 예산 편성권은 ‘전가의 보도’다. 각 부처에서 역점 정책도 예산실에서 돈을 받아야만 추진이 가능하다. 기재부가 제출한 예산안 심사·의결은 국회 몫이지만, 헌법 제 57조에 따르면 정부 동의 없이 지출예산 각 항의 금액을 늘리거나 새 비목을 설치할 수 없다. 예산실과 함께 2차관이 거느린 재정 부문의 파워도 막강하다. 각 부처의 국가재정사업 성과관리 및 평가도 재정관리국의 몫이다.


각종 세제를 결정하는 세제실,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경제정책국의 파워도 막강하다. 국내 금융 총괄 기능은 금융위원회로 넘어갔지만, 기재부는 여전히 국제금융 분야를 총괄하고 있다. 기재부 공무원들이 다른 부처 공무원들의 질시 혹은 미움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기재부도 유일하게 오금을 저리는 부처가 있다. 바로 행정안전부 정부혁신조직실이다. 정부혁신조직실 산하 조직정책관은 중앙부처 위의 부처 ‘옥상옥’(屋上屋)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기재부를 비롯한 18개 부처의 조직 신설, 직제 개편, 인원 증원 등 조직 개편 업무를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조직 정원을 늘리거나, 과를 국으로 격상 신설하는 경우 조직정책관과 사전 협의를 거쳐야만 한다.

조직정책관은 과별로 소관 담당 부처가 구분돼 있다. 조직기획과, 조직진단과, 경제조직과, 사회조직과 등 4개 과가 나눠서 부처와 협의를 진행한다. 기재부는 경제조직과 소관이다. 조직 규모 확충을 위해 기재부 국장급 간부가 경제조직과장 및 사무관들에게 읍소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아무리 예산을 쥐고 흔드는 기재부여도 행안부 승인 없이 팀이나 과별 조직을 한 단계 격상시키는 건 불가능하다. 한 기재부 국장급 간부는 “조직 개편 관련 행안부 실무진들의 반대로 도저히 진척이 없었는데 차관보가 직접 나서서 읍소한 끝에 간신히 성사될 수 있었다”고 털어놨다.

기재부가 행안부를 부러워하는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통상 행안부 국장급 이상 고위공무원단은 서울시를 제외한 전국 광역 지방자치단체 부단체장으로 파견 근무한다. 이달 기준 전국 17개 광역 지자체 중 서울과 대전을 제외한 15곳의 부단체장이 행안부 출신이다. 각 광역지자체의 기획조정실장도 행안부 부이사관이 맡는 경우도 많다.

반면 기재부 고위공무원단은 대통령실이나 국제기구 파견 등을 제외하면 달리 갈 곳이 없다. 기재부 고위공무원단의 인사 적체가 심한 것도 이 때문이다. 최근 들어 광역 지자체 경제부지사를 맡는 기재부 출신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이들은 모두 기재부를 퇴직한 후 옮긴 것이다.

‘라이벌 부처’로 불리는 기재부와 행안부는 공교롭게도 지난달부터 정부세종청사에서 동거를 시작했다. 기재부와 행안부는 지난달 중앙동(사진) 이사를 마무리했다. 기재부가 중앙동 중층부(3~10층), 행안부가 저층부(1~4층)와 고층부(10~14층)를 사용하고 있다. 당초 기재부와 행안부는 전망이 좋은 고층 사용을 두고 기 싸움이 적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중앙동의 ‘로열층’으로 불리는 12층은 행안부 몫이 됐다. 이곳은 다른 층보다 층고와 공간이 훨씬 넓다. 당초 대통령의 세종 집무실로 사용하기 위해 마련된 공간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행안부 장·차관과 1급 공무원들이 사용하고 있다. 조직정책관 사무실은 13층에 자리 잡고 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와 1·2차관 및 1급 기재부 간부 집무실은 8층에 마련돼 있다.

두 부처는 같은 건물에 입주했지만 협의 과정은 예전과 달라진 게 없다고 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조직 관련 협의를 할 때 이동하기 편리하다는 장점만 있을 뿐 소통이 원활해졌다는 생각은 일절 들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중앙동 입주 층수만 보더라도 예산을 관할하는 기재부보다 조직개편 업무를 전담하는 행안부의 파워가 더 세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라고 지적했다.

강경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