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는 단순히 환경 문제로만 국한할 수 없다. 에너지, 경제, 외교, 국토 이용 등 광범위한 이슈에 걸쳐 있어 한두 개 정책만으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는 과제다. 실제로 각종 정부 계획에는 다양한 기후변화 대응 정책이 중첩 나열돼 있다.
국가의 여러 정책을 동일 목표를 공유하며 수립할 때 강조되는 원칙 중 하나가 정합성이다. 다양한 정책이 맞물려 도는 톱니바퀴처럼 일사불란하게 짜여야 한다는 원칙이다. 하지만 정합성 유지는 서로 다른 부처 간은 말할 것도 없고 동일 부처 내에서도 매우 어려운 일이다. 더욱이 정합성에 집착한 나머지 억지로 꿰맞춘 계획은 목표 달성은커녕 예상치 못한 부작용만 양산할 수 있어 없으니만 못하다.
최근 에너지정책의 최우선 목표는 기후변화 원인 물질인 이산화탄소 배출 저감이다. 목표도 구체적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2021년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 호기롭게 ‘2030년까지 40% 감축’ 목표를 천명했기 때문이다.
목표가 구체화되자 10차 전력수급계획, 14차 장기 천연가스수급계획 등 크고 작은 계획이 정합성 원칙을 지키며 착착 수립됐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애초부터 꼼꼼히 따져보고 설정한 목표가 아니었다. 기간은 10년도 남지 않았다. 에너지 안보, 수급 안정, 실현 가능성 등 전통적인 에너지정책 원칙을 따질 겨를이 없었다. 목표 달성을 위한 연립방정식 문제만 남았을 뿐이었다.
답은 간단했지만 황당했다. ‘재생에너지 대폭 확대, 원전 소폭 확대, 석탄·천연가스 대폭 축소’다. 세부 계획을 일일이 따지지 않더라도 전문가들의 공통 평가는 ‘비현실성’으로 축약된다. 예를 들어 액화천연가스(LNG) 발전 비중은 2036년까지 현재 26.8%에서 9.3%로 쪼그라든다. 이 목표는 차질 없는 재생에너지 보급, 공급 변동성 대비책 마련, 전기 수요 증가 억제 등 다양한 주변 목표 달성을 전제로 한다. 하지만 대개의 목표는 낙관적 예측에만 의존한 채 다양한 비관적 견해에는 눈을 감고 자신이 정한 예상 경로만을 바라보는 소위 ‘터널비전’의 결과물인 경우가 많다. 경로에서 조금만 탈선해도 계획은 실패로 끝날 공산이 크다.
실물경제에서 법정계획은 실존하는 제약 조건이다. 법정계획에 반한 의사결정을 내릴 사업자는 거의 없다. 법정계획의 실패가 실물경제 실패로 이어질 고리가 여기에 있다.
법정 에너지계획에 의한 에너지 수급 실패가 우려된다. 우리나라 LNG 장기계약 물량이 2027년까지 820만t가량 줄어들 예정이어서 신규 계약을 서둘러야 할 시점이다. 하지만 10차 전력수급계획에 따르면 2036년까지 발전용 LNG 수요량은 오히려 약 600만t 줄어든다. 통상 20년 기간으로 체결하는 장기 천연가스 도입 계약에 나서지 못하는 이유다. 노후한 발전기 교체 여부를 두고 고민에 빠진 발전사는 또 다른 사례다. 발전사 대표는 가스발전량이 줄어들지 않을 거라고 개인적으로는 확신하고 있지만 법정계획을 무시하고 가스발전기 교체에 나설 수 없다고 토로한다.
LNG 발전량이 법정계획과 다르게 예측 경로에서 벗어날 경우 천연가스 장기계약 부족은 가스수급 위기로, 발전기 교체 지연은 전기수급 위기로 번질 수 있다. 엉터리 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 달성을 위해 만들어진 엉터리 법정 에너지수급계획이 제 발등을 찍는 격이다. 정교한 에너지수급계획 작성이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라면, 법정계획이 아니라 ‘정부의 공식 전망’ 정도로 계획의 위상을 낮출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