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멘필 첫 내한, 만석 연주장에 울려 퍼진 '브람스 앙상블' [클래식 리뷰]

입력 2023-04-26 17:53
수정 2023-04-30 17:16

200여 년의 전통이 살아 숨 쉬는 공연이었다. 숙성된 소리가 요하네스 브람스 음악만의 깊은 맛을 전했다. 브레멘필하모닉은 정직하고 가식 없는 연주로 브람스 관현악곡의 정수를 전했다. 누군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고 묻는다면 선뜻 “브람스를 매우 좋아한다!”고 답하게 할 만큼 진정성 있는 연주였다.

오랜 세월 전통적 독일 오케스트라의 모습을 간직해온 브레멘필은 지난 25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독일 작곡가 요하네스 브람스의 작품만으로 첫 번째 내한 공연을 선보였다. 피아니스트 조성진에 이어 올해 두 번째 로 2000여석 전석 매진 기록을 세우며 한국 관객의 높은 관심을 반영했다. 브레멘필과 브람스는 인연이 깊다. 브람스는 생전에 브레멘필을 직접 지휘했고 자신의 <독일레퀴엠>을 초연하기도 했다. 브레멘필도 브람스하면 브레멘필이 떠오를 정도로 브람스의 곡을 자주 연주했다.

공연은 브람스 대학축전 서곡으로 시작해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이중협주곡, 교향곡 4번으로 이어졌다. 브람스 관현악곡들은 꽉 짜인 구성과 엄격한 논리를 갖추고 있기에 지휘자의 통찰력과 오케스트라의 탄탄한 연주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한 제대로 연주하기가 쉽지 않다. 브레멘필은 이날 독일 오케스트라 특유의 응집력 있는 소리와 일사불란한 앙상블로 브람스 연주의 정석을 보여줬다.

첫 곡부터 탄탄한 연주가 펼쳐졌다. 대학축전 서곡은 독일 대학생들이 즐겨 부르던 여러 노래 선율이 메들리처럼 펼쳐지는 곡이기에, 비평가 막스 칼베크는 “주페의 서곡처럼 여러 학생 노래를 유쾌하게 혼합해낸 곡”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선율이 여럿이어서 자칫 산만해질 위험이 있으나 지휘자 마르코 레토냐와 브레멘필은 서곡의 마지막에 터져 나오는 ‘즐거워하라(Gaudeamus)’의 선율에 방점을 찍은 해석으로 강한 인상을 심어줬다.

이중협주곡은 바이올리니스트 임지영과 첼리스트 문태국이 협연자로 나섰다. 이 곡은 화해와 우정이 담긴 노래다. 브람스는 오랜 친구이자 당대 최고 바이올리니스트인 요제프 요아힘과 한때 서먹한 사이였다. 그는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이중협주곡을 작곡한 뒤 요아힘에게 헌정해 요아힘의 마음을 누그러뜨렸다. 이중협주곡에서 바이올린이 바이올리니스트 요아힘을 나타낸다면 첼로는 작곡가 브람스의 목소리라고 볼 수도 있으리라. 문태국은 풍요롭고 그윽한 브람스의 음성을 대변하며 관객에게 말을 걸어왔고, 임지영은 마치 생전의 요아힘이 들려줬을 것처럼 잘 다듬어진 톤을 구사하며 절묘한 조화를 이뤄냈다.

지휘자 레토냐의 음악적 통찰력은 이중협주곡 연주에서도 돋보였다. 두 악기가 같은 선율을 연주하며 완전한 화합을 나타내는 듯한 2악장이 자칫 단조롭게 연주될 위험이 있었지만, 레토냐는 오케스트라 연주의 강약 조절을 세심하게 신경 쓰며 독주 악기들과 오케스트라가 좀 더 생생하게 브람스 선율의 맛을 표현해낼 수 있도록 이끌었다. 브람스의 이중협주곡 연주를 성공적으로 마친 임지영과 문태국은 헨델의 파사칼리아를 비롯해 두 곡의 앙코르를 연주하며 관객의 환호에 답했다.

후반부를 장식한 브람스 교향곡 4번 연주에선 전통적 독일 악단의 연주 방식을 고수해온 브레멘필의 개성을 느낄 수 있었다. 1악장은 제1바이올린 주자들이 고요하게 연주를 시작하므로 그들이 처음 활을 긋는 순간부터 긴장하게 되는 곡이다. 악장의 리드를 바탕으로 모든 현악 연주자가 활을 쓰는 위치와 스타일을 통일해 연주하면서 1악장 시작부터 순조로운 출발을 보였고, 현악 주자들은 활을 붙였다 떼는 순간까지 일치시키며 브람스 관현악곡의 밀도 높은 소리를 만들어냈다.

물론 아쉬움도 있었다. 첼로 주자 여덟 명에 더블베이스 여섯 명으로 브람스 교향곡을 연주하기에는 저음 현악기가 다소 부족한 느낌이었다. 2악장에서 관악기들의 잔실수가 집중력을 떨어뜨리기도 했다. 다행히 선율의 흐름과 강약 표현을 세심하게 이끌어 낸 지휘자의 리드 덕분에 거슬리지는 않았다. 4악장에서 트롬본 주자들의 힘찬 연주까지 에너지를 더하며 브람스 교향곡 4번을 훌륭하게 마무리했다.

앙코르는 헝가리 무곡 두 곡이었다. 브람스 헝가리 무곡 5번은 무대를 가득 메운 관객이 박자에 맞춰 박수를 보낼 정도로 흥겨워하며 호응했다. 마치 빈필하모닉 신년음악회의 ‘라데츠키 행진곡’이 흘러나왔을 때처럼 즐거운 마무리였다.

최은규 음악평론가·KBS ‘FM실황음악’ 진행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