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용길 작가(77·이화여대 명예교수)의 그림 앞에서 ‘동양화는 고리타분하다’는 편견은 보기 좋게 깨진다. 오 작가는 명산이나 절경을 그리지 않는다. 뒷산 둘레길이나 평범한 천변 등 주변에서 만날 수 있는 친근한 풍경이 주제다. 하지만 그의 작품은 피부에 와닿는 계절의 변화를 그 어떤 서양화보다도 생동감 있게 전해준다.
서울 압구정동 청작화랑에서 열리고 있는 오 작가의 초대전은 그의 작품세계를 만날 기회다. 청작화랑에서 열린 작가의 일곱 번째 전시로, 이번 전시에는 그가 봄의 풍경을 담은 작품 23점이 나왔다.
오 작가가 미술계에 이름을 떨치기 시작한 건 불과 27세 때다. 1973년 국전에서 문화공보부 장관상을 받은 게 계기였다. 이어 월전미술상, 선미술상, 의재 허백련 예술상 등 주요 상을 휩쓸었다. 붓을 든 지도 어느덧 50여년. 이제 그의 이름 뒤에는 “진경산수화 대가인 겸재 정선의 맥을 잇는 국내 최고의 수묵담채 화가”(김윤섭 미술평론가)라는 평가가 따라붙는다.
오 작가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수묵과 채색의 조화다. 김상철 동덕여대 교수는 평론을 통해 “강렬한 수묵이 뒷받침하는 가운데 맑은 색채로 풍부함과 대비를 살렸다”고 설명했다. 덕분에 오 작가의 그림은 생생하면서도 튀지 않고, 유려하면서도 편안하다.
이번 전시에서는 작업실 주변을 비롯해 경북 봉화의 청암정과 안동의 군자마을 등 작가가 둘러본 풍경들을 그린 작품들이 나와 있다. 봄꽃과 푸른 식물들을 통해 봄의 화사함을 표현한 작업이 특히 많다. 김상철 교수는 “수많은 작가들이 실경산수화의 변화를 선도하겠다는 꿈을 꿨지만, 작가처럼 분명한 차별화를 통해 성과를 드러낸 이는 거의 없다”고 평했다. 전시는 5월 10일까지.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