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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제조업을 부흥시키려는 조 바이든 행정부의 노력은 미국의 물가상승률이 4% 아래로 낮아지지 못할 것임을 의미합니다.” (래리 핑크 블랙록 회장)
바이든 행정부가 인플레이션 완화를 목적으로 추진한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이 되려 물가 수준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대규모 투자 프로젝트들이 추진되면서 창출된 고임금 일자리가 소비자에게 전가되는 비용을 높일 수 있다는 논리다. 청정에너지 부문에 지급되는 3690억달러(약 493조원) 규모의 보조금이 세금 인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24일(현지시간) 일부 경제학자들과 투자자들 사이에서 제시되고 있는 이 같은 견해를 소개했다.
IRA와 반도체 지원법(CHIPS Act) 등 시행을 계기로 반도체와 클린테크(친환경 기술) 분야에서 여러 제조업 프로젝트들이 추진되면서 노동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전망이며, 이에 따라 임금과 물가가 상승하리란 예측이다. IRA와 반도체 지원법이 미 의회를 통과한 지난해 8월 이후 2000억달러(약 267조원) 규모의 새 투자 프로젝트들이 발표됐다.
미국 건설산업협회(ABC)는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들의 수요를 맞추기 위해선 정상적인 고용 수준보다 54만6000명 더 많은 건설 노동자가 필요할 것으로 추정했다. 글로벌 컨설팅업체 맥킨지는 반도체 지원법으로 기술 부문 인력 부족이 심화할 것이란 전망을 내놨다. 2030년까지 미 반도체 업계에 엔지니어 30만명, 기술자 9만명 등의 추가 인력이 필요할 것이란 추산이다.
게리 허프바우어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PIIE) 선임연구원은 “더 많은 기업이 미국으로 진입하고, 이곳에서 확장할 수 있도록 하는 데 많은 돈을 쏟아붓고 있지만, 정작 여기서 일할 노동자들이 없다”고 짚었다. 그는 노동시장에서 수요가 공급을 웃도는 ‘타이트(tight)’한 상황이 유지됨에 따라 사업 비용이 10%가량 증가할 수 있다고 봤다.
윌리 쉬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도 “고임금 일자리가 늘어날수록 소비자들이 더 큰 비용을 지불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청정에너지 분야에 지급되는 막대한 규모의 보조금이 시장 왜곡을 불러일으킬 것이란 지적도 상당하다. 이든 해리스 뱅크오브아메리카 세계 경제 부문 대표는 “보조금을 지급하고, 자국 기업이 생산한 물품을 사도록 강요하는 건 자유 시장 경제에 반하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보조금 지급에 따른 세금 부담도 커질 전망이다. 글로벌 투자은행인 크레디트스위스(CS)와 골드만삭스, 미 싱크탱크 브루킹스연구소는 IRA로 3690억달러 규모의 보조금이 지급되면서 미국인들에게 총 1조달러(약 1335조원)가 넘는 세금이 부과될 것으로 내다봤다.
‘탄소 중립’을 위한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도 가격 상승 요인이 감지된다. 제이슨 보르도프 미 컬럼비아대 국제에너지정책센터장은 “풍력 터빈을 포함한 청정에너지 부품에 대한 수요는 물가 상승으로 이어진다”며 “지정학적 혼란에 덜 취약한 에너지 공급망을 만들기 위해선 높은 비용을 지불할 가치가 있다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대중(對中) 의존도 완화와 탈탄소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던 바이든 행정부의 시도는 애초부터 무리가 있었다는 비판이다. 대만 반도체 기업 TSMC의 설립자 모리스 창은 “오리건 공장에서의 생산 비용이 대만 공장보다 50% 비쌌다”면서 “매우 값비싼 헛고생을 하고 있는 셈”이라고 비난했다. 보르도프 센터장은 “우리가 필요로 하는 속도대로 청정에너지를 확장하려면 공급망 부문에서 여전히 중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장서우 기자 suw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