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다태아(쌍둥이 이상) 출산이 세계에서 가장 많은 나라입니다. 정부의 적극적인 난임시술 지원 정책 덕분입니다.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아이를 낳고 싶어 하고, 또 낳을 수 있는 사람에게 이런 지원을 집중적으로 해줘야 합니다.”
다태아 출산분야 세계적 권위자로 꼽히는 전종관 서울대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저출산 문제 해법에 대해 “자녀 수에 따라 기하급수적으로 지원을 늘리는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전 교수는 2021년 국내에서 34년 만에 태어난 다섯 쌍둥이를 비롯해 배우 송일국 씨의 세 쌍둥이 대한·민국·만세 등 약 1만 명의 다태아 출산을 집도한 이 분야 권위자다. 전 교수는 “다태아를 선택적으로 유산하는 경우가 많은데 근거가 없다”고 했다. 최근 서울대병원에서 전 교수를 만났다.
▷다태아가 전체 출생아의 5.4%(2021년 기준)에 이를 정도로 많아지고 있습니다.
“난임 시술을 통한 임신이 늘어서 그렇습니다. 시험관 시술을 하는 데 수백만원이 드는 외국과 달리 한국은 건강보험으로 상당 부분을 지원해주기 때문에 시험관 시술이 많고 쌍둥이 출산 비중이 높은 편입니다.”
▷다태아 출산을 많이 맡는 이유가 있습니까.
“다태아 임신부를 마다하지 않아서일까요. 그간 쌍둥이 8000명(출생아 기준), 세 쌍둥이 1500명, 네 쌍둥이 40명, 다섯 쌍둥이 5명을 받았으니 거의 1만 명이 됐네요. 2000년대 초반부터는 임신부 카페 등에 제 소문이 나서 많이 찾아온 것 같습니다. 감사한 일입니다.”
▷다태아 임신부에게 태아 전원 출산을 권유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선택적 유산은 의학적 근거가 없습니다. 세 쌍둥이를 임신했을 때 모두를 낳도록 한 서울대병원과 한 명을 선택적으로 유산한 모 사립대 병원의 출산성공률(태아 전원 출산 기준)을 비교하면 서울대병원이 90%를 기록해 사립대의 84%에 비해 유의미한 차이가 나타났습니다. 더 큰 문제는 세 쌍둥이 중 유산될 아이를 선택하는 기준이 없다는 점입니다. 발달이 느리거나 장애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태아를 골라 유산할 수는 없습니다. 배에서 유산시키면 제일 위에 있던 아이가, 질을 통해 유산시키면 제일 아래 있던 아이가 다른 근거 없이 선택되는 것입니다.”
▷태아 수가 적은 것이 산모의 건강에는 낫지 않나요.
“세 쌍둥이를 임신하면 보통 30주께에 태아 한 명이 만삭까지 큰 정도가 됩니다. 이후 4~5주가 더 흐른 후 출산하게 되죠. 산모가 좀 힘들 수는 있을 겁니다. 하지만 아이가 죽고 사는 문제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산모에게 ‘안정을 취하지 말라’고 해 화제가 됐습니다.
“12주 이내에 유산되는 아이가 많은 게 사실이지만 (산모가) 안정을 취하지 않아서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제대로 활동을 안 하면 혈전증이 생길 수 있고, 산모의 건강이 급격히 나빠질 수 있습니다.”
▷현재 난임 시술 지원 방식은 타당하다고 보십니까. (현재 정부는 일정 소득 기준 이하의 부부만을 대상으로 난임 시술비를 지원한다.)
“난임 지원책은 아이를 낳고 싶어 하고, 또 낳을 수 있는 사람에게 집중돼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출산 의향이 있는 사람에게 소득과 무관하게 난임 지원을 해주기로 한 서울시의 결정은 잘한 것입니다. 다만 산모의 연령을 고려할 필요는 있습니다. 고령 산모 지원은 재고해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산모가 44세를 넘으면 임신 확률이 2% 이하로 떨어집니다. 지원하더라도 효과를 거두기가 어렵습니다. 이들에게 한정된 건보 재정을 쓰는 것보다는 가능성이 높은 쪽에 집중 지원하자는 것입니다.”
▷다른 저출산 정책도 효과가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280조원을 썼다고 하는데 어떤 것이 효과를 냈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효과를 평가한 뒤 좋은 제도만 골라내 집중해야 합니다. 저출산 예산의 규모는 꼭 크다고만 볼 것은 아닙니다. 프랑스는 2000년대 초에 1년에 44조원을 쏟아부은 적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자녀 수가 늘어날수록 기하급수적으로 지원을 늘리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자녀 양육 부담을 여성에게만 지우는 사회적 인식도 개선돼야 합니다.” 전종관 교수는 다둥이 분만 권위자…28년간 1만명 출산 도와전종관 서울대병원 교수는 다태아 출산 분야에서 세계적 권위자다. 산부인과 교수로 28년 일하면서 1만 명의 다태아를 받았다. 방송에도 여러 차례 소개돼 화제를 모았다. 전 교수는 “밤낮 할 것 없이 응급환자를 만난다”면서도 “불려 나가는 게 아니라 좋아서 나간다. 아이가 태어나는 걸 보는 게 좋다”고 했다.
전 교수는 1984년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뒤 줄곧 서울대병원에서 일했다. 1995년 박사학위 취득 후 교수로 임용됐다. 원래 난임환자를 진료하는 ‘생식 내분비’를 전공하려고 했지만 은사인 고(故) 이진용 교수의 권유로 응급수술을 주로 하는 산과를 택했다.
다음달 13일엔 자신이 출산을 도운 500쌍의 다태아를 서울대 운동장에 초청해 ‘홈커밍’ 행사를 연다. 초등학교 동창인 오광현 청오디피케이(한국도미노피자 운영사) 회장이 제안해 성사됐고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사재로 후원하기로 했다.
전 교수는 내년에 정년을 맞는다. 소감을 묻자 “다태아 연구가 중단될까 걱정된다”고 했다. 전 교수는 피검사와 설문조사를 통해 다태아 500쌍에 대한 코호트(집단) 연구를 하고 있다. 다태아의 발달 과정을 살펴보는 연구다. 전 교수는 “정부에 자료를 모두 넘길 테니 연구를 계속해달라고 했지만 받지 않겠다고 해 고민”이라며 “연간 수천만원이 드는 연구비를 그간 자체 충당해왔는데 퇴임하면 계속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