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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각국 중앙은행들이 올해도 금 보유량을 늘릴 전망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고 미·중 갈등이 지속되면서 안전자산인 금 매입에 적극적으로 나섰다는 분석이다.
23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세계금협회(WGC) 자료를 인용해 83개 중앙은행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 결과 3분의 2 이상이 올해 각국 중앙은행의 금 보유량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고 보도했다. 이미 지난해부터 중앙은행들은 금 매입에 열을 올려왔다. WGC에 따르면 세계 중앙은행들이 지난해 사들인 금의 양은 1136t으로 전년보다 152% 급증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수출 규제와 대만 문제 등을 둘러싼 미·중 갈등으로 안전자산인 금 수요가 늘었다는 분석이다. 중앙은행 전문지 센트럴뱅킹퍼블리케이션과 투자은행 HSBC가 최근 중앙은행 자금운용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대부분이 지정학적 위험을 인플레이션 다음가는 위험 요인으로 지목했다. 응답자 중 40% 이상이 지정학적 위험을 가장 큰 우려 요인으로 꼽았다. 응답자 중 3분의 1가량이 우크라이나 전쟁과 미·중 갈등 때문에 이미 보유 자산 구성에 변화를 줬거나 줄 예정이라고 답했다.
특히 비서구권 국가 중앙은행들의 금 보유량이 늘어난 게 눈길을 끈다. 중국 인민은행의 금 보유량은 지난해 말에 사상 처음으로 2000t을 넘겼다. 지난해 11~12월 두 달 동안에만 62t을 사들였다. 터키의 금 보유량은 지난해 말 542t으로 1년 만에 148t 늘었다. 중동과 중앙아시아 국가들도 지난해 금을 적극적으로 구매했다.
FT는 “최근 6개월간 금을 가장 많이 매입한 중앙은행 상위 10곳 중 9곳이 러시아와 인도, 중국 등 개발도상국이자 달러 패권에 도전하는 국가들”이라고 설명했다. 존 리드 WGC 수석시장전략가는 비서구권 국가 중앙은행들이 금 매입에 적극적인 이유를 서방의 대러시아 제재에서 찾았다. 러시아 중앙은행이 보유한 금이 모두 자국 내에 있어 서방의 금융 제재를 피해 나갈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리드 전략가는 “대러시아 제재 뒤 미국과 동맹을 맺지 않은 국가들은 중앙은행 자산을 어디에 어떻게 보관해야 할지 고심해왔다”며 “러시아 중앙은행 사례에서 금이 (제재 회피에) 유용하다는 점이 입증됐다”고 했다.
금 선물 가격은 지난 13일 트로이온스당 2055.3달러까지 오르며 사상 최고치 경신 기대를 키웠다가, 차익 실현 매물이 나오면서 21일엔 트로이온스당 1990.5달러(6월물 기준)에 마감했다.
월스트리트에서는 금값이 역대 최고치를 경신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글로벌 경기침체 우려가 지속되고, 미국 중앙은행(Fed)의 기준금리 인상이 곧 끝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상황에서 달러화가 힘을 잃고 있어서다. 최근 씨티그룹은 금값이 트로이온스당 2300달러까지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뱅크오브아메리카 애널리스트들도 올해 4분기 금값이 2200달러를 돌파할 것으로 예측했다. 현재 역대 최고치는 2020년 8월 기록한 2069달러다.
한편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전체 중앙은행 준비금의 절반 이상인 58%는 또 다른 안전자산으로 꼽히는 미국 달러가 차지했다. 유로화는 20%를 소폭 웃돌았고 위안화는 2.7%에 그쳤다.
노유정 기자 yjr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