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시대 설탕은 사치품이었다. 왕이나 귀족들만 먹을 수 있는 귀한 식재료였다. 일반인도 설탕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게 된 것은 16세기 이후다. 유럽인들은 아프리카 노예라는 값싼 노동력과 신대륙의 광활한 땅을 활용해 대규모 플랜테이션을 시작했다. ‘설탕 혁명’이었다.
당시 영국은 최대 노예무역 국가였다. 아프리카에서 노예들을 실어와 쿠바 자메이카 등 카리브해에서 사탕수수를 재배, 설탕을 만들어 유럽에 가져다 팔았다. 노예와 설탕을 거래하는 과정에서 대출과 보험이 필요했고, 영국 금융산업 발전으로 이어졌다. 설탕 무역으로 영국은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 이는 영국 산업혁명의 밑거름이 됐다.
설탕이 한국에 보급된 것은 20세기 초로 추정된다. 1920년 평양에 사탕무를 원료로 하는 제당공장이 처음 들어섰다. 국내 기업으로는 제일제당(현 CJ제일제당)이 1953년 부산에 첫 설탕 공장을 지었다. 해외 원조물자 중 하나였던 원당을 가공해 설탕을 만들었다. 하루 생산능력은 25t 정도. “아침에 설탕 한 트럭을 싣고 나가면 오후에 한 트럭의 돈이 들어왔다”고 할 만큼 인기를 끌었다.
이토록 귀했던 설탕은 현대사회 인류의 건강을 위협하는 공적(公敵)이 됐다. 비만, 당뇨병, 심혈관계 질환 등 질병의 원인으로 지목돼 ‘달콤한 살인자’란 별명까지 붙었다. ‘제로 슈거’ 제품도 쏟아지고 있다. ‘제로 콜라’ 등 탄산음료에 이어 최근엔 ‘제로 슈거 소주’까지 나왔다. 설탕의 중독성에 대한 경고도 이어지고 있다. 중독의 강도는 뇌까지 미치는 속도에 비례한다고 한다. 니코틴이 뇌로 전달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10초, 설탕은 불과 0.6초다. 담배보다 약 20배 빠른 속도로 뇌를 자극할 정도로 중독성이 강하다는 얘기다.
천덕꾸러기로 전락한 설탕 가격이 최근 12년 만에 최고치로 치솟았다. 세계 곳곳에서 이상 고온과 폭우로 설탕 생산량이 줄었기 때문이다. 가공식품발(發) ‘슈거플레이션(슈거+인플레이션)’ 우려도 나온다. 과자·아이스크림부터 빵·음료 등 거의 모든 가공식품에 빠짐없이 설탕이 들어간다. 이참에 건강에 좋지 않은 설탕 소비를 약간 줄일 수 있다는 게 위안이 될까.
전설리 논설위원 slj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