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것은 감정이다.”
나이키 최고마케팅책임자(CMO)를 지낸 그레그 호프먼이 말하는 나이키의 성공 비결이다. 말단 디자인 인턴으로 입사해 CMO에 오르기까지 27년을 나이키에서 보낸 그는 지난해 미국에서 <영혼의 설계자>란 책을 펴냈다.
나이키는 1964년 설립됐다. 처음엔 ‘블루 리본 스포츠’라는 이름이었다. 미국 오리건대 육상 선수 출신인 필 나이트와 그의 코치인 빌 보워먼이 같이 세운 이 회사는 일본 오니츠카 타이거(현 아식스) 신발을 수입해 팔았다. 그러다 1971년 이름을 나이키로 바꾸고 직접 신발을 만들기 시작했다.
나이키는 한참 후발주자였다. 독일 아디다스, 일본의 아식스만 해도 1949년에 설립됐다. 하지만 마케팅 전략이 남달랐다. 1977년 광고가 대표적이다. 저 멀리 길을 따라 한 사람이 달리고 있는데 어떤 신발을 신었는지 보이지 않는다. ‘결승선은 없다(There is no finish line)’는 광고 문구와 나이키 로고만 달렸을 뿐이다. 1988년엔 전설이 된 ‘저스트 두 잇’ 광고가 나왔다.
호프먼은 이를 ‘감정 디자인’이란 말로 설명한다. “사람들에게 그 어떤 꿈도 달성할 수 있다고 느끼게 하는 스토리, 이미지, 경험을 만드는 능력”이다. 어렸을 때부터 나이키 팬이었지만 그도 나이키에 들어가고 나서야 “그런 감정이 의도적으로 디자인됐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미니애폴리스예술대 졸업을 앞둔 1992년 여름의 나이키 인턴 경험은 그에게 신선한 충격을 줬다. 그곳은 직장이 아니라 떠들썩한 고등학교 같았다. 반바지와 샌들, 심지어는 맨발에 가슴을 다 풀어헤친 셔츠가 일상이었다. 스포츠, 음악 등 각자의 취미와 관심사를 사무실로 가져왔고, 동료에게 기발한 장난을 치기 위해 에너지를 쏟았다.
그곳엔 열정도 넘쳐났다. ‘선봉에서 이끈다’는 정신이 있었다. “혁신하고 싶다면 관습적인 전술을 버리고 처음부터 선두에 서서 경쟁자의 반응을 유도해야 한다”는 뜻이다.
호프먼은 “우리는 제품을 팔지 않는다. 스토리를 판다”고 했다. 그는 신참 디자이너였던 1997년 광고 촬영을 위해 브라질 국가대표 축구팀의 월트 투어에 따라간 일화를 들려준다. 팬 서비스를 위한 연습 경기 중 수백 명의 팬이 담장을 넘어 몰려왔다. 촬영팀이 필사적으로 그들을 막던 중 호나우두가 호프먼에게 말했다. 그냥 팬들을 들여보내라고. 우려와 달리 팬들은 호나우두를 짓밟지 않았다. 선수와 팬이 하나가 되는 감격의 순간으로 변했다. 광고 촬영 방향도 바뀌었다.
그는 “고객의 감정을 끌어내는 데는 많은 돈이 필요하지 않다”고 강조한다. 다섯 명의 회사도 수천 명의 직원을 거느린 회사만큼 경이로운 성공을 거둘 수 있다는 것이다. “너무 많은 기업이 그들의 창의적인 에너지를 이미 굳어진 통념과 편견에 낭비하면서 인재를 억압하곤 한다”고 지적한다. 데이터는 고객에 대해 많은 정보를 주지만 너무 의존하면 독이 될 수 있다고도 했다. “창의성과 혁신성이 떨어지고 위험을 회피하는 경향이 강해진다”는 이유에서다.
책은 마케팅과 관련해 실용적인 조언을 많이 건넨다. 흠이 없지는 않다. 두서없이 이야기가 이어진다. 저자가 ‘의식의 흐름’에 따라 말한다고 느껴질 정도다. 27년 동안 나이키에서 일한 내부자의 책이지만, 내밀한 부분은 드러나지 않는다. 광고 캠페인을 벌이며 여러 가지 의견 다툼과 실패가 있었을 테지만 성공적으로 수행한 이야기밖에 없다. 디자인과 광고에 대해 말하면서도 사진이 하나도 없는 점은 불친절하게 느껴진다. 나이키 창업자 필 나이트의 <슈독> 같은 책을 생각했다면 기대에 못 미칠 수 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