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 서울 강남 노후 단지에서 아파트와 상가 소유주 간 갈등이 커지고 있는 것은 재건축 사업 기대와 관련이 깊다. 새 정부의 안전진단 등 규제 완화로 노후 단지에서 재건축 사업이 속속 재개되고 있다. 하지만 강남 주요 단지에서 상가가 사업 추진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파트 입주권을 받으려는 상가 소유주와 재건축 수익성을 높이려는 아파트 소유주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기 때문이다. ○‘대치 은마’ 6월 조합설립 무산
은마아파트 재건축조합추진위원회는 상가 소유주 간 갈등으로 조합설립 동의율 확보에 차질을 빚고 있다. 추진위는 당초 이달 동의서 징수를 끝내고 오는 6월께 조합을 설립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상가 동의율 확보가 지연되면서 조합설립 일정도 늦어지게 됐다.
현 추진위는 상가 분산 배치를 내세운 과거 추진위와 달리 상가 소유주가 요구해온 독립채산제와 대치역 인근 상가 배치 등을 수용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상당수 상가 소유주가 조합 설립에 동의한 배경이다. 하지만 최근 일부 상가 소유주가 재건축 지분율을 더 높여야 한다며 상가협의회에 대표 자리를 요구하고 나서면서 문제가 생겼다.
상가 소유주의 아파트 분양을 위한 정산 비율도 풀어야 할 숙제다. 최정희 추진위원장은 “상가협의회와 협약서 협상은 대부분 합의했고, 남은 부분도 대화를 이어가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서초구 진흥아파트 역시 재건축 지분율 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다. 상가 소유주들이 “조합이 일방적으로 상가 조합원의 아파트 분양권을 박탈하고 상가 면적을 줄여 지분율이 침해됐다”며 총회 의결 무효 가처분신청을 한 것이다. 아파트 조합원들은 “일부 상가 소유주가 쪼개기 방식으로 사업 자체를 흔든다”며 반발하고 있다. ○상가 쪼개기…‘상가 빼고’ 재건축도재건축 사업에서 아파트와 상가 소유주 간 갈등은 해묵은 문제다. 아파트를 분양받으려는 상가 소유주와 재건축 수익을 지키려는 아파트 소유주 간 이해관계가 달라서다. 특히 수익성이 큰 강남권에선 크고 작은 소송과 그에 따른 사업 지연이 빈번했다. 2003년 재건축 조합을 설립한 강남구 청담삼익은 상가와의 지루한 소송전 끝에 이르면 상반기 일반 분양에 나선다. 서초구 신반포12차 역시 상가와의 소송으로 한 차례 조합 설립이 취소되기도 했다.
최근 서울시의 신속통합기획 등으로 재건축 사업이 속도를 내면서 수면 아래 있던 아파트·상가 소유주 갈등이 촉발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투기 등을 목적으로 한 상가 쪼개기가 늘어나는 것도 양측 간 갈등을 키우는 요인이다. 상가 소유주는 원칙적으로 새로 짓는 상가만 분양받을 수 있지만 조합이 정관에 명시하면 입주권을 받을 수도 있다. 적은 돈으로 상가를 사면 재건축 아파트를 분양받을 수 있다는 유혹에 ‘상가 쪼개기’가 자주 발생한다.
상가 쪼개기가 심해지면서 ‘상가 산정 비율’을 둘러싼 갈등도 커지고 있다. 산정 비율은 상가 조합원의 아파트 분양을 결정하는 중요 요소로, 100%인 경우 기존에 가진 상가 가치가 아파트 분양가와 같아 새 아파트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쪼개기가 심한 단지는 상가 조합원이 사업에 딴지를 걸며 산정 비율을 1%로 낮춰 달라고 요구하는 사례가 많다. 이렇게 되면 아파트 분양가의 1%에 해당하는 상가 지분만 가져도 아파트 입주권을 확보할 수 있다.
최근에는 사업 초기 단계부터 상가를 제외하는 강남권 단지도 잇따른다. 제척소송을 진행 중인 강남구 개포우성5차 등이 대표적이다. 한 강남권 재건축 조합장은 “애초에 상가를 제외하자는 아파트 주민의 의견이 요즘 크게 늘었다”면서도 “소송에 따른 사업 지연은 감안해야 한다”고 했다.
유오상 기자 osy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