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계에서 죄르지 리게티(1923~2006)는 현대음악을 대표하는 작곡가다.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은 리게티는 생전에 어느 피아니스트 한 명에게 무한한 애정과 신뢰를 드러냈다. 그의 이름은 피에르로랑 에마르. 리게티는 “내 곡을 가장 완벽하게 해석하고 연주하는 피아니스트”라고 극찬했다.
지난 19~20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서울시립교향악단의 ‘피에르로랑 에마르의 리게티 협주곡’은 한마디로 명불허전이었다. 에마르는 역시 ‘리게티의 대가’였다.
피아노 앞에 앉은 에마르는 1악장 초반의 복잡한 옥타브 패시지를 타악기처럼 타건하며 연주를 시작했다. 크고 두툼한 손으로 건반들을 빠르게 두드리며 신비감을 키워나갔다. 이어서 목관악기와 글로켄슈필 등의 악기군들이 합류하며 급속도로 복잡하고 난해한 현대음악의 얼굴을 드러냈다.
리게티의 피아노 협주곡은 5악장으로 구성됐다. 슬라이드 휘슬(호루라기), 오카리나 등 이채로운 악기가 다수 포함된 소편성 오케스트라 곡이다. 리게티는 아프리카를 비롯해 여러 민속음악으로부터 영향을 받았으며 다양한 리듬을 10년 이상 연구했다. 피아노 협주곡 역시 특유의 원시적이고 강렬한 리듬이 두드러진다.
양손이 엇갈리는 리듬, 수시로 등장하는 변박, 복잡한 불협화음은 연주자에게 고도의 지력과 운동능력을 요구한다. 여러 음악을 합성해 놓은 듯 동시에 여러 종류의 리듬, 박자, 속도가 공존해 한 순간도 집중하지 않을 수 없다.
지휘봉을 잡은 데이비드 로버트슨은 이러한 연주자의 어려움을 충분히 배려하는 듯 보였다. 그는 중간중간 에마르에게 사인을 주고, 그의 손을 살피며 난해한 곡을 쾌활하게 이끌어갔다.
에마르는 환갑을 훌쩍 넘은 나이에도 세밀한 건축도면을 그리는 기술자처럼 엄밀하고 정교하게 완주해 탄성을 자아냈다. 현대음악의 두 거장은 25분여간 혼돈과 충격의 연속으로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연주가 끝나자 박수갈채가 이어졌다. 에마르는 “이번에도 리게티(Also Ligeti)”라고 외쳤다. 앙코르는 리게티의 무지카 리세르바타 7번(19일 공연)이었다.
연주보다는 체험에 가까운 공연이었다. 음악에 조예가 깊은 이들은 지적인 희열을, 일반 청중들은 다양한 음악적 실험과 자극을 따라가는 체험에 가까웠을 것이다. 에마르의 손으로 리게티를 들어보길 원했던 관객에게 충분히 기념이 될 만한 공연이었다.
최다은 기자 ma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