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운전 살인자, 무관용 대응하라" 들끓는 여론 [이슈+]

입력 2023-04-22 07:56
수정 2023-04-22 17:31

대전에서 발생한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 음주운전 사고로 9세 고(故) 배승아 양이 숨진 충격이 채 가시지 않았는데도 '만취 사고'가 줄어들기는커녕 외려 우후죽순처럼 발생하는 모양새다. 사회적 경각심이 느슨해졌다는 비판과 더불어 음주운전에는 무관용 대응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와 국회가 안전장치 마련에 나서는 가운데 실제 음주운전 감소로 이어질지 관심이 쏠린다.9세 소녀 대낮에 숨진 지 일주일도 안 됐는데…
대낮 스쿨존 음주운전 2시간 만에 55대 적발
지난 8일 오후 2시께 지인들과 술자리를 가진 뒤 만취 상태에서 운전대를 잡은 60대 전직 공무원 A씨는 스쿨존을 거닐던 배 양의 목숨을 무참히 앗아갔다. 사고 당시 가해자 A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면허 취소 기준(0.08%)을 웃도는 0.108%였다. A씨의 운전으로 배 양과 함께 있던 9~11세 어린이 3명도 다쳤다. CCTV 영상을 보면 식당에서 나온 A씨는 난간을 붙잡고 계단을 내려올 정도로 자기 몸을 가누지 못하는 상태였다. 그는 사고 당일 소주 반병 정도를 마셨다고 주장했다가 다음 날 '한 병 정도'로 진술을 번복하기도 했다.

전국적으로 공분이 커지자 경찰은 지난 14일 오후 1시부터 3시까지 전국 431곳에 교통경찰 1642명을 투입해 대대적인 음주 단속을 벌였다. 배 양이 숨진 소식이 알려진 지 6일밖에 지나지 않은 날, 그것도 대낮에 실시한 음주 단속이었다. 하지만 당시 단속 결과 면허정지(혈중알코올농도 0.03% 이상) 36건, 면허취소(0.08% 이상) 13건, 측정거부 6건 등 총 55건이 적발됐다. 실제로 대낮 음주운전 사고는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서울 노원구에서 8살 딸을 키우는 박 모(44·여) 씨는 "아이들이 등하교하는 시간에 음주 운전자들이 판을 친다니 끔찍하다"며 "음주운전에는 무관용 대응 원칙이 반드시 적용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경찰청에 따르면 올해(1월 1일~4월 7일) 음주운전 교통사고 발생 건수는 3277건으로 전년(3522건) 대비 다소 감소했다. 그러나 주간 시간대(오전 6시~오후 6시) 교통사고는 953건으로 전년(581건) 대비 2배 가까이 늘어났다. 전체 사고의 41.2%에 달한다. 경찰 관계자는 "나들이 철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 해제가 맞물리면서 들뜬 분위기 속에 음주운전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이 느슨해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경찰은 오는 5월 31일까지 전국에서 음주운전 특별단속을 실시하며, 매주 1회 전국 일제 단속을, 각 시도 경찰청 주관으로 주 2회 이상 지역별 일제 단속을 실시할 계획이다. 민식이도 막지 못한 비극…
"제2의 승아 막아야" 국회서 쏟아지는 법
2019년 9월 11일 충남 아산의 한 스쿨존에서 벌어진 교통사고로 숨진 고(故) 김민식 군도 배 양과 같은 나이인 9살이었다. 김 군의 희생으로 스쿨존에서 안전 운전 의무 등을 어기고 만 12세 미만 어린이를 사망하게 할 경우 3년 이상 또는 무기징역에 처하도록 처벌을 대폭 강화한 이른바 '민식이법'(특정범죄가중처벌법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2020년 3월 등장했다. 하지만 국회에서는 이번 배 양의 사건과 지난 스쿨존 내 음주 교통사고 통계를 두고 '민식이도 비극을 막지 못했다'는 탄식이 나온다. 경찰청에 따르면 스쿨존 음주 교통사고는 2020년 사고 4건, 부상 6명에서 2021년 사고 9건, 부상 13명, 2022년 사고 5건, 1명 사망으로 꾸준히 증가세다.

이처럼 민식이법의 실효성에 의문을 갖는 여론이 나오자 국회에서는 사실상 무관용 대응을 원칙으로 하는 법안들을 잇달아 마련하고 있다. 늦게나마 안전벨트를 한 차례 더 조여 매는 것이다. 가장 눈길을 끌었던 건 '음주살인운전자 신상 공개법'이다.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17일 대표발의한 이 법은 음주운전 가해자의 신상을 공개할 수 있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 음주운전으로 사람을 사망에 이르게 한 자와 10년 내 음주운전을 2회 이상 위반한 자의 이름·얼굴·나이 등을 공개해 음주운전에 대한 국민적인 경각심을 높인다는 취지다. 하 의원과 함께 기자회견에 선 배 양의 가족 송 모 씨는 "제2의 승아 사건이 발생하지 않도록 신상 공개가 꼭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강력 범죄와 성범죄에만 신상 정보를 공개하고 있는 현행법을 개정해 음주 치사도 살인에 준하는 중대범죄로 다루도록 하겠다는 것으로, 하 의원의 법안에는 김영주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양정숙 무소속 의원도 함께 이름을 올렸다. 안전장치 마련에 여야가 합심한 것이다. 같은 당 윤창현 의원도 하 의원과 대동소이한 법안을 이달 중 대표발의한다고 밝혔다. 윤 의원의 법안은 스쿨존으로 지역을 특정해 살인뿐만 아니라 인명피해가 나면 신상을 공개하도록 한다. 윤 의원은 "2020년 3월 민식이법이 시행됐음에도 별다른 효과가 없다는 평가까지 등장하는 실정"이라며 "음주운전은 그 자체로 살인 행위이자 패가망신의 지름길이라는 사회적 공감대를 이루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10명 중 6명 "음주운전 살인자 신상 공개 찬성"
음주운전 가해자의 신상을 공개하는 데 대한 국민 여론은 어떨까. 여론조사 플랫폼 서치통이 국민 5738명(남녀 무관)을 대상으로 지난 18~20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국민 10명 중 6명 이상은 음주운전으로 사람을 사망하게 한 자의 이름과 얼굴 등 신상을 공개해야 한다고 답했다. 반대하는 의견은 35.8%였다. 찬성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현행법 처벌이 너무 약하기 때문'이라는 답변이 33.9%로 가장 높았다. 이어 '음주운전에 대한 경각심을 높여햐 한다'는 의견이 31.3%, '고의적 살인과 다름없기 때문'이라는 응답이 16.3%였다. 반대하는 이들의 답변 중에선 '고의적 살인도 아닌데 지나치게 가혹하다'가 24.9%로 가장 많았다. 이어 '신상 공개보단 다른 처벌 규정 강화 필요'(20.3%), '인권 침해 가능성'(9.9%) 순이었다.

이 밖에도 음주운전 가해자가 피해자 자녀의 양육비를 배상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법안이 발의돼 눈길을 끌었다. 국회부의장인 정우택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18일 대표발의한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 일부개정법률안'은 음주운전으로 인해 피해자가 사망 혹은 경제활동이 불가능한 중상을 입은 경우, 가해자가 피해자의 미성년자녀에 대한 양육비용을 배상하도록 하고 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도 지난 19일 페이스북을 통해 당 차원에서 음주운전 방지 장치 의무화 법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홍민성 한경닷컴 기자 m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