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상영 금융통화위원이 20일 "물가 안정은 중앙은행의 최우선 책무이지만 안정적 경제성장을 지원하고 금융부문의 안정에도 기여해야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물가안정과 성장, 금융안정 간의 (단기적) 상충관계가 첨예화된 것에 마음이 가볍지만은 않다"고 했다.
주 위원은 이날 오후 이임사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지난 2020년 4월 21일 임기를 시작한 주 위원은 3년 간의 임기를 마쳤다. 주 위원은 대표적인 비둘기파(통화 완화 선호)로 분류된다. 금리 인상과정에서 동결 소수 의견을 내는 등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주 위원은 이임사에서 "재임 기간은 전 인류가 곤경에 처한 시기와 겹쳤다"고 했다. 스페인 독감 이후 100년 만의 팬데믹, 1970년대 이후 40여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의 인플레이션을 경험했다는 것이다. 주 위원은 "보건위기 극복은 마무리 단계에 돌입한 것으로 보이지만, 경제의 회복과 정상화에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이며, 여전히 대내외적 불안 요인이 잠재해 있는 상태"라고 진단했다.
주 위원은 또 팬데믹 시기의 인플레 양상에 대한 분석도 내놨다. 주 위원은 "팬데믹 초기 물가상승을 촉발한 주요인은 감염 확산에 의한 공급의 부족과 차질이었지만, 이와 동시에 수요 측면에서는 부문간 수요 이동(demand shift)이 발생했다"고 말했다. 서비스 소비가 막히자 재화 소비가 늘었고, 서비스 부문은 비대면으로 수요가 이동했다는 것이다.
주 위원은 "팬데믹 기간 중의 인플레이션이 과거와 차별화된 모습은, 특정 부문에서의 공급 차질로 가격이 상승하고, 그에 따라 다른 부문으로 수요가 이동하면서 발생하는 연쇄적 가격 상승이었다는 점"이라고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수요가 줄어드는 부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격의 경직성이 작동해 경제 전반의 인플레이션이 제어되지 못했다는 것이 주 위원의 판단이다.
주 위원은 "확장적 거시경제정책이 물가에 영향을 주었지만, 팬데믹 기간의 이례적 인플레이션의 원인을 단순히 총수요·총공급의 총량 개념에서만 찾을 수는 없을 것"이라며 "정책 대응의 방향이나 강도에 있어 조금은 다른 시각에서 접근해야 하지 않나 하는 고민을 재직 내내 했다"고 밝혔다.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인 주 위원은 임기를 마치고 다시 학교로 돌아가 강의를 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박기영 금통위원도 주 위원과 함께 이임했다. 고승범 전 위원의 잔여임기를 소화한 박 위원은 2021년 10월 취임해 1년 6개월의 짧은 임기를 마쳤다. 박 위원은 "많은 분들이 저를 금통위 개최 횟수 대비 기준금리를 가장 많이 올린 사람이라고 말한다"며 "그보다 한국은행으로부터 재직기간 대비 가장 많은 혜택을 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한은 임직원분들께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고 이임사를 남겼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