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넥센·세인트나인 마스터즈 대회가 개최되는 경남 김해 가야CC(신어·낙동 코스)는 올해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가 열리는 코스 중 가장 길다. 총전장 6818야드로 웬만한 남자대회 못지않다. 2013년 시작한 이 대회는 같은 코스에서 6664야드로 출발했다가 2016년 6856야드까지 늘었던 적도 있다. 선수들의 체격이 커지고 장비가 좋아지면서 비거리가 늘어난 덕분이다.
그런 KLPGA투어에도 남자 선수들의 전유물로만 여겨지던 ‘7000야드 시대’가 곧 열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선수들의 기량이 급격히 성장하고 있고, 변별력을 키우기 위해선 코스 길이를 늘리는 게 필수 요소로 보고 있다. 최진하 전 KLPGA 경기위원장은 “(2010년대) 6400야드로 삼았던 코스 기준이 최근에는 6600야드 정도로 올라온 상태”라며 “메이저대회도 6800야드 이상으로 세팅하는 등 전반적으로 코스 세팅이 길어지는 추세”라고 전했다.
7000야드에 가장 근접했던 대회는 2020년 인천 청라골프장에서 열린 한국여자오픈이었다. 당시 코스 길이는 6929야드에 달했다. 최 전 위원장에 따르면 7000야드 이상으로 코스를 세팅했다가 접었던 적도 있다. 지난해 강원 춘천 라비에벨 올드코스에서 열린 SK쉴더스·SK텔레콤 챔피언십이 그랬다. 골프계에 따르면 당시 대회 조직위원회는 7000야드 이상으로 티잉 에어리어와 핀 위치를 조절했다가 막판에 찾아온 강풍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전장을 단축했다고 한다.
사실 선수들의 평균 드라이브 비거리는 숫자만 놓고 보면 ‘역행’하는 분위기다. 2013년 250.28야드까지 치솟았던 평균 비거리(규정 대회 수 충족 선수 기준)는 2018년 239.98야드에 그치며 240야드 선까지 무너졌다. 이후 235야드까지 내려갔다가 올해(238.92야드) 겨우 반등하고 있다.
그러나 선수들의 기량은 비거리와 비례하지 않고 있다. 평균 비거리가 250야드에 달했던 2013년 KLPGA투어 선수들의 평균 타수는 74.06타로 지난해 72.98타보다 1타 이상 많이 쳤다. 한 골프 매니지먼트 회사 관계자는 “있는 힘을 100% 써서 치는 선수가 없기 때문에 비거리가 줄어든 것”이라며 “대부분 ‘컨트롤 샷’을 하는 것을 고려하면 체감상 비거리는 10년 전보다 더 늘어났다고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 KLPGA 경기위원은 “지금까지 페어웨이 폭과 러프 길이 등으로 난이도를 조절해왔다”며 “그러나 변별력을 키우기 위해 가장 필요한 요소는 결국 ‘전장 길이’”라고 설명했다.
장타자가 즐비한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도 7000야드가 넘는 전장에서 대회를 연 건 2011년 US여자오픈(7026야드) 딱 한 번뿐이다. 그러나 대회장인 미국 덴버의 더 브로드무어 골프장은 해발 고도가 1600m 넘는 곳이다. 주최 측은 해수면 지역보다 비거리가 약 10% 이상 더 나가는 것을 고려해 세팅했다. 메이저리그에서 홈런이 제일 많이 나오는 구장으로 유명한 쿠어스필드도 이 골프장과 같은 덴버에 있다. 더 브로드무어 골프장을 제외하면 제일 긴 코스는 2019년 KPMG 여자 PGA챔피언십이 열린 미국 미네소타주의 헤이즐타인 골프장(6807야드)이었다.
다만 LPGA투어에선 오히려 코스 길이를 더 줄여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여자 선수가 남자 선수만큼이나 박진감 넘치는 경기를 보여주지 못하는 것이 긴 전장 때문이라는 게 이유다. 미국 골프위크에 따르면 LPGA투어에서 60타 이하의 스코어가 나온 건 지금까지 여섯 번이다. 그중 안니카 소렌스탐이 2001년 세운 59타가 유일한 ‘50대 타수’로 남아 있다. 반면 미국프로골프(PGA)투어에선 60대 이하 타수가 52회나 나왔다.
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