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나라 곳간이 위태롭다

입력 2023-04-18 17:33
수정 2023-04-19 00:12
한국 경제에 먹구름이 몰려온다. 경상수지가 2012년 후 처음으로 두 달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수출의 20%를 차지하는 반도체산업이 직격탄을 맞았다. 경기 침체의 여파로 세수가 격감하고 있다.

올해 1~2월 세수는 전년 동기 대비 15조원 이상 줄었다. 소비 위축과 부동산·증시 불황이 주범이다. 2019년 이후 4년 만에 세수 결손이 불가피하다. 추경호 부총리는 최근 “올해 세수는 당초 세입 예산을 잡았던 것보다 부족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고 인정했다. 수출 둔화, 반도체 불황으로 하반기 경기 회복 전망이 불투명하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최근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1.5%로 하향 조정했다.

지난해 국가채무는 1067조원으로 사상 처음 1000조원을 돌파했다. 정부의 실질적인 재정 상태를 보여주는 관리재정수지는 117조원 적자로 역대 최대 규모다. 코로나19 대응 등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선심성 돈 풀기가 큰 몫을 했다. 재정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이 극성을 부렸다. 지난 문재인 정부 5년간 10번의 추경 편성으로 추경이 ‘뉴노멀’이 됐다.

국가채무 증가 속도가 가파르다. 적자성 채무 비율도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한국은 기축통화국이 아니다. 중규모 개방경제로 대외 경제 충격에 취약하다. 1997년 외환위기를 신속히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11.7%의 국가채무비율로 상징되는 ‘건전 재정’ 덕분이었다. 2008년 금융위기 극복 또한 재정 곳간 덕을 톡톡히 봤다. 조지 오스본 전 영국 재무장관은 “국가가 빚을 통제하지 못하면 빚이 국가를 통제한다”고 경고했다. 지출의 씀씀이를 잘 따져 재정 다이어트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미국의 사례는 타산지석이 아닐 수 없다. 코로나 팬데믹 극복을 명분으로 대규모 재정 팽창에 나선 2021~2022년, 4조달러의 연방 재정적자가 발생했다. 국가채무가 31조달러를 넘어섰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이자지출 비율이 1.5%에 이르렀다. 전례 없는 확장적 재정정책이 40년 만의 인플레이션을 견인했다. 래리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는 “과도한 부양책이 없었다면 인플레이션을 겪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총선을 1년 앞두고 선심성 입법이 폭주하고 있다. 대구·경북 신공항 특별법, 광주 군공항 이전 특별법이 조만간 처리될 전망이다. 예비타당성 조사가 면제되고 10조원 이상이 투입된다. 아동수당과 기초연금 증액, 저소득 청소년 지원 문제가 거론된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양곡관리법 개정안 재추진 움직임도 거세다.

재정준칙 도입이 시급하다. 국가채무와 통합재정수지 비율을 60%와 -3% 내에서 관리하는 관련 법안이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재정 포퓰리즘이 성장 잠재력을 갉아먹고 있다. 지출 증가가 세입 증가를 압도하는 ‘악어의 입’ 문제에 적극 대처해야 한다. 종이호랑이로 전락한 예타 제도가 강화돼야 한다. 지난 20년간 144조원의 예산 절감 효과를 거뒀지만 정책적 면제 비율이 76%를 넘어 실효성이 훼손됐다. 예타는 공공기금 사용의 유용한 검증 장치다. 예타가 재정 건전성을 지키는 방파제라는 인식이 중요하다.

내국세의 20.79%를 자동 배정하는 지방교육교부금을 손질해야 한다. 학령인구는 2022년 528만 명에서 2029년 425만 명으로 100만 명 줄어든다. 교육교부금은 76조원에서 126조원으로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현행 내국세 연동 구조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하다.

인구 감소, 지방 소멸 등 새로운 재정 환경 변화에 대응하는 재정 패러다임이 요구된다. 지난해 총인구가 감소세로 돌아섰다. 2025년에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한다. 합계출산율은 0.78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꼴찌다. 총인구 감소는 지방 소멸로 이어진다. 인구 유출과 고령화로 신음하는 지역사회의 공동화에 대비해야 한다. 나랏빚이 과도하게 늘어나는 나라일수록 국가신용도가 빠르게 떨어진다. 방심하면 일본 같은 재정 불량 국가로 전락한다. ‘성유근검파유사(成由勤儉破由奢).’ 성공은 근검에서 오고 실패는 사치에서 온다는 당나라 시인 이상은의 글이다. 세수 결손을 국채 발행으로 보전하겠다는 포퓰리즘적 발상을 버려야 한다. 재정 건전성이 핵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