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소개서 시대의 종말? : 챗GPT 등장 이후의 채용 환경 ②] 기자가 직접 챗GPT로 자기소개서 작성해보니

입력 2023-04-18 12:37
수정 2023-04-18 12:38
[한경잡앤조이=이진호 기자/염준호 대학생 기자] ‘우리 사회를 비추는 등대가 되겠습니다’ 우리 사회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습니다. 그 변화의 주요 원동력 중 하나가 경제활동입니다. 경제활동은 우리의 삶과 더불어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이에 따른 여러 이슈들은 우리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를 관찰하고 보도하는 경제 취재 기자로서의 역할과 책임은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학보사 기자로 활동하면서, 대학 내부의 다양한 경제 이슈를 취재하고 보도하였습니다. 그 중에서도, 대학 내 소상공인들의 경제적 어려움을 털어놓는 인터뷰와 보도기사는 많은 독자들의 공감과 이해를 받으며, 대학 내부적으로도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이를 통해 경제 분야에서 발생한 문제들이 실제로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느꼈습니다. 이러한 경험들은 경제 취재 기자로서의 열망을 더욱 깊이 있게 만들었습니다. 한국경제신문에서 경제 취재 기자로서 제 역량을 발휘하여, 우리 사회를 비추는 등대가 되겠습니다.

다음은 한국경제신문 지원자의 자기소개서 일부다. 언뜻 잘 쓴 자기소개서로 보인다. 지원 동기를 논리적으로 설명했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경험과 느낀 점도 잘 녹여냈다. '우리 사회를 밝히는 등대'가 되겠다는 문학적 비유로 포부까지 당당히 밝혔다.

놀랍게도 이 자기소개서는 '챗GPT(GPT-3.5)'가 단 두 시간 만에 작성했다. 감쪽같지 않은가. 학보사 기자로 활동했다는 경험도, 소상공인의 경제적 어려움을 다룬 인터뷰와 보도 기사도 모두 거짓이다. 가상의 인물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우리 일상에 스며든 인공지능
'챗GPT'는 미국의 기술 스타트업 '오픈AI'가 작년 11월말 출시한 '생성형 인공지능'이다. 생성형 인공지능이란, 기존 데이터를 학습해 이용자의 요구에 따라 새로운 데이터를 생성해 내는 인공지능을 의미한다. 사용 방법은 간단하다. 질문하기만 하면 된다. 간단한 질문에도 에세이 작성, 프로그램 코드 작성, 심지어 시험 문제까지 척척 풀어낸다. 일상 생활에 광범위하게 활용되는 탓에 챗GPT는 공개 5일 만에 하루 이용자 100만 명을 돌파했고, 출시된 지 두 달 만에 1억 명을 돌파했다.

대학생 16.6% “취업 위해 인공지능 활용하고 있다”
그 어떤 세대보다 최신 기술에 민감한 대학생은 일상에서 인공지능을 어떻게 활용하고 있을까. 구인구직 아르바이트 전문 포털 '알바천국'이 대학생 544명을 대상으로 '인공지능' 관련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38.8%(211명)의 대학생이 '일상에서 인공지능을 활용하고 있다'고 응답했고, 이들 중 적지 않은 응답자(16.6%)가 '취업(자기소개서 작성, 일자리 추천 등)'에도 인공지능을 활용하고 있다고 답했다. '챗GPT'가 출시된 지 4달도 지나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굉장히 빠른 속도다. 앞으로 인공지능의 발전이 빨라질수록 더 많은 대학생이 취업을 위해 인공지능을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

챗GPT(GPT-3.5)에 자기소개서 작성 요청하니, “처음에는 어색한 답변 돌아와”



챗GPT에 한국경제신문에 취재기자로 지원하는 가상 인물의 자기소개서 작성을 요청했다. 학력과 전공과 같은 기본 정보와, 학보사에서 일했던 경험을 간단하게 알려줬다. 30초도 안돼서 자기소개서 한 편이 완성됐다.

기대가 컸던 탓일까. 기자의 눈에는 다소 부족해 보였다. '존경하는 한국경제신문 취재부서장님'으로 시작되는 글의 형식은 다소 어색했다. 내용도 추상적이었다. 자기소개서의 핵심은 구체적인 경험과 간결함인데, '다양한 글쓰기 경험'과 같은 추상적인 단어는 곤란하다.

얼마나 간절했으면···'챗GPT' 활용법 설명하는 80만회 유튜브 영상과 전자책까지

답답한 마음에 기자도 인터넷의 도움을 받아보기로 했다. 유튜브와 검색 포털에 '챗GPT 자기소개서'라는 키워드로 검색해보니 수많은 콘텐츠가 쏟아져 나왔다. '인공지능을 활용해 단 1시간 만에 맞춤형 자기소개서를 작성해준다'는 전자책부터, '챗GPT로 10분 만에 자기소개서 쓰기' 같은 유튜브 영상까지. 특히 유튜브 영상들은 적게는 수만 회부터, 많게는 80만 회까지 하나같이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었다.

기자는 조회수가 높은 유튜브 영상 세 편과, 시중에 판매 중인 전자책 두 권을 참고했다. 이들 콘텐츠는 공통적으로 두 가지 원칙을 강조하고 있었다. 첫째, 부족한 내용을 여러번 보완해 질문하고,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질문하라는 것. 기자는 이 두 원칙을 토대로 자기소개서 작성을 다시 시도했다.

챗GPT로 수준 높은 자기소개서 얻으려면, “반복적 구체적 명령 필요해”



△소제목을 추가해서 작성해 줘 △'등대'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다시 작성해줘 △이 부분이 마음에 안 들어. 조금 더 문학적으로 표현해줘 △구체적인 사례를 추가해 작성해 줘 △문장을 자연스럽게 다듬어 줘.

기자가 두 시간 정도 챗GPT에 부과한 명령 중 일부다. 수준 높은 자기소개서를 작성하기까지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보완이 필요한 부분을 자세하게 짚어 질문하면 챗GPT는 순식간에 글을 수정해 완성도 있는 글을 작성해 냈다.

GPT-4.0 ‘마이크로소프트 Bing’에 같은 질문 해보니, “속도 빠르지만 문장력은 별로”



GPT-3.5를 탑재한 챗GPT가 두 시간만에 훌륭한 자기소개서를 작성했다면, 발전된 모델인 GPT-4.0을 탑재한 '마이크로소프트 Bing'은 어떨까. Bing에게도 챗GPT와 비슷한 명령을 주었더니, 실제로 경험하지 않은 그럴 듯한 에피소드를 지어내 빠른 속도로 글을 작성했다. 하지만, 챗GPT와 마찬가지로 문장력이 다소 떨어지는 듯했다.

챗GPT 단점인 '한국어' 보완하는 국내 서비스 '뤼튼' 사용해보니
챗GPT를 활용해 자기소개서를 직접 작성해보니, '저는'이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는 등 일상에서 사용하지 않는 어색한 표현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이는 챗GPT의 한국어 지원 능력이 영어에 비해 떨어지기 때문이다. 네이버와 카카오를 비롯한 국내 IT기업들이 '한국어 구사력'을 내세우며 생성형 인공지능 서비스를 내놓는 이유다.

국내 토종 스타트업 '뤼튼테크놀로지스'가 운영하는 AI 콘텐츠 생성 플랫폼 '뤼튼'은 완성도 높은 한국어 지원을 무기로 10만 명이 넘는 이용자를 끌어모았다. 뤼튼의 장점은 무엇보다 특화된 서비스다. 이용자가 작성하고자 하는 글의 종류에 맞춰 글을 작성해준다. 서비스 대상은 자기소개서뿐 아니라, 보도자료, 유튜브 시나리오, 심지어 SNS 광고 문구까지 다양하다.




기자가 직접 자기소개서 작성 서비스를 이용해 보았다. 챗GPT보다 훨씬 간단하고 편리했다. 지원 회사 이름과 직무 및 직군, 이력과 경험, 문항을 직접 기입하면 30초도 안 되어 '한 줄 자기소개'와 '문항별 자기소개서'가 작성됐다. 원하는 문장이 나올 때까지 계속해서 추가 명령을 내려야 하는 탓에 수정에만 2시간이 넘게 걸렸던 챗GPT에 비하면 엄청난 속도다.

무엇보다 자연스러우면서 고급스러운 한국어 구사 능력이 돋보였다. 인공지능이 작성해준 대로 실제 채용 전형에 지원해도 손색없을 수준이었다. 다만, 단점은 인공지능이 작성한 대부분의 내용이 허구에 기반한 내용이라는 거다. 예를 들면, 기자가 제시한 '학보사 활동'이라는 키워드만으로 '학보사 편집국장으로 교내 행사나 학생회 활동'을 취재했다는 내용이 생성됐다.

취업 위해 중요한 것은 지원자만의 생각과 경험
평소 글을 많이 써본 적 없는 취업 준비생에게 자기소개서 작성은 막막하기만 하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어떻게 써야 할지 좀처럼 감이 잡히지 않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손쉽게 자기소개서를 작성할 수 있는 생성형 인공지능에 취업 준비생의 관심이 쏠리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하지만 생성형 인공지능을 활용해 운 좋게 서류 전형을 통과했다고 해도 문제다. 면접이라는 다음 관문이 지원자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챗GPT로 완벽한 자기소개서를 작성했다고 해도 면접까지 완벽하게 대비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현직 대기업 인사담당자 A씨는 '면접에서 자기소개서에 기반한 돌발 질문을 하기에 허구로 작성된 자기소개서로 면접을 대비하기는 상당히 어렵다'며, '결국 당락을 결정하는 건 지원자만의 솔직한 이야기'임을 강조했다.

언제까지나 자기소개서 중심의 채용 전형이 유지되리라는 보장도 없다. 기자가 경험하지도 않은 허구의 경험을 기반으로 단시간에 수준 높은 자기소개서를 작성할 정도로 작성이 쉬워진 상황에서 현 자기소개서가 채용 시장에서 갖는 가치가 하락할 수 있어서다.

전직 인사담당자 B씨는 “자기소개서는 지원자를 종합적으로 검토하기 위한 한 가지 방법에 불과하다”며 “인공지능이 발전해 자기소개서로 지원자를 평가할 수 없다고 판단된다면 자기소개서 작성 자체를 요구하지 않거나, 지원자의 역량을 검토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이 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jinho23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