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은 17일 “미래 세대의 기회를 박탈하는 고용세습을 반드시 뿌리 뽑아야 한다”고 말했다. 직원 자녀를 우선 채용하는 고용세습 조항을 단체협약에 둔 기업 노사에 대해 정부가 처음으로 사법 조치에 나선 가운데 관련 입법 등 후속 조치가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윤 대통령은 이날 용산 대통령실에서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면서 관계 부처에 이같이 지시했다고 이도운 대변인이 브리핑에서 전했다. 앞서 고용노동부는 ‘단체협약상 고용세습 조항을 철폐하라’는 시정명령을 따르지 않은 기아 노동조합이 속한 민주노총 금속노조와 금속노조 위원장, 기아와 기아 대표 등을 노조법 위반 혐의로 최근 입건했다.
▶본지 4월 17일자 A1면 참조
이와 관련해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윤 대통령은 기회의 평등을 무너뜨려 공정한 기회를 원천 차단하는 ‘세습 기득권’과 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며 “일명 ‘현대판 음서제’인 고용세습을 뿌리 뽑을 것을 고용부와 관계 기관에 지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또 “(고용세습은) 미래 세대의 기회를 박탈할 뿐 아니라 우리 헌법정신인 ‘자유와 연대’의 가치를 훼손하는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타파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치권에서는 윤 대통령이 ‘주 69시간제’로 불린 근로시간 개편안의 입법예고 기간이 종료된 날 고용세습 근절 의지를 밝힌 점에 주목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18일 주재하는 국무회의에서도 고용세습 근절과 노조 회계 투명성 강화 등 노동개혁 필요성을 강조할 계획이다. 근로시간 개편안이 청년세대의 반대에 부딪혀 표류하는 상황에서 노동개혁 이슈를 재점화해 관련 정책 주도권을 잃지 않겠다는 포석으로 읽힌다.
정부는 공정채용법(채용절차법 개정안)을 연내 마련해 현재 벌금 500만원인 고용세습 관련 처벌 수위를 징역형으로 끌어올리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윤 대통령은 고용세습 단체협약을 유지하는 것은 채용 비리와 다름없다고 보고 있다”며 “(노조가) 500만원 벌금을 내고 계속 고용세습을 유지하겠다고 하면 국민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