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사진)가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와 관련해 계좌이체 어음 수표 신용카드 등 지급결제 보증을 위한 은행의 담보자산 비율을 높이겠다는 뜻을 밝혔다. ‘스마트폰 뱅크런(대규모 예금인출)’ 등에 따른 파산으로 은행이 지급결제 불능 상태에 빠질 경우에 대비해서다.
주요 20개국(G20) 중앙은행 총재 회의 등 참석차 미국을 방문 중인 이 총재는 지난 14일 워싱턴 특파원들과의 간담회에서 “한은 결제망에 들어오는 기관(은행)은 지급 보증을 위한 담보 자산이 있는데 결제하는 양이 확 증가하면 거기에 맞춰 담보도 늘려야 한다”며 “지금 디지털 속도로 볼 때 담보 수준이 적절한지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SVB 같은 사태가 일어나면 디지털 뱅킹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은에 따르면 지급결제를 위한 담보 비율은 현재 70%다. 지급결제는 지급인이 거래 은행에 맡겨놓은 돈을 수취인에게 지급해 줄 것을 요청해 이뤄지는 거래를 말한다. 은행은 계좌이체 등 지급결제 거래가 발생하면 우선 수취인에게 돈을 지급한 뒤 다음 영업일에 한은 당좌계좌를 통해 다른 은행으로부터 자금을 받는다. 이때 건마다 따로 결제하지 않고 은행끼리 줄 돈과 받을 돈을 계산해 차액만 결제한다. 만약 한 은행이 파산하면 해당 은행으로부터 차액을 받기로 한 은행들은 돈을 떼일 위기에 처한다. 이런 경우에 대비해 국고채, 한은 통화안정증권 등 증권을 담보로 맡겨야 한다. 문제는 현행 담보 비율대로라면 은행 파산 시 나머지 차액 결제 금액의 30%는 당장 미결제가 발생하고, 이를 나중에 차액 결제 시스템에 참여한 은행들이 나눠서 손실을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은행권에 신용 리스크가 연쇄적으로 발생할 우려가 있다.
이 때문에 한은은 당초 담보 비율을 오는 8월부터 내년 7월까지는 80%, 내년 8월부터 2025년 7월까지는 90%, 그 이후로는 100%로 확대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SVB 사태에 따라 이 일정을 앞당기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차액 결제 담보증권은 하루 평균 30조원 안팎 규모인 것으로 전해졌다. 담보 비율이 높아지면 불가피하게 수조원 규모의 유동성 축소 효과가 예상된다.
한편 이 총재는 13일 간담회에서 “정부가 예금·대출금리 마진(차이)을 줄이도록 지도 혹은 부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임도원 기자/워싱턴=정인설 특파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