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윤석열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 53년 만에 납세자의날 기념식에 참석해 원천징수하는 임금 근로자의 국가재정 기여에 대해 감사의 말을 전했다. 실제로 ‘유리 지갑’이라고 불리는 월급쟁이들이 내는 세금이 국가 수입 중 가장 크다. 지난해 임금 근로자가 낸 소득세는 128조7000억원으로 국가 총수입의 21%이며, 간접적으로 내는 부가가치세 81조6000억원까지 더하면 그 비중은 31%로 올라간다.
이렇게 애써 세금을 냈는데도 지난해 국가 재정은 64조6000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총지출이 682조4000억원으로 총수입 617조8000억원을 넘어선 탓이다. 더욱이 국민연금 등 연금수지를 제외하면 소위 ‘관리재정적자’는 117조원으로 증가한다. 개인도 수입보다 지출이 많으면 빚으로 남듯, 재정적자로 인해 국가채무가 전년보다 97조원 증가했고, 누계액이 사상 최초로 1000조원을 넘어서 1067조7000억원에 달했다. 이런 채무는 작년에 임금 근로자가 낸 소득세 전부를 상환에 쓰더라도 무려 8년 이상이 걸리는 액수다. 심각한 것은 재정적자와 국가채무가 앞으로 쓰나미처럼 몰려올 수 있다는 것이다. 올 2월까지 관리재정적자가 벌써 30조9000억원이다. 윤석열 정부의 긴축정책에 따라 지출이 전년보다 6조6000억원 줄었지만, 세수가 더 크게 16조1000억원 감소했다. 세수 감소는 경기 둔화로 인해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우리나라 국가채무 규모 자체보다 증가율을 걱정하는 이유다.
국고지기인 기획재정부의 입장은 명확하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추경호 부총리는 지난 11일 뉴욕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세계 105개국에 있는 재정준칙이 한국에 없는 게 말이 되느냐”며 “재정을 제어하는 장치가 필요해 재정준칙을 법제화하자는 건데 국회에서 계속 표류시키면 어떻게 하냐”고 호소했다고 한다. 12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경제재정소위원회에서 사회간접자본(SOC) 사업 등의 예비타당성조사 기준을 현행 총사업비 500억원, 국비 지원 300억원 이상에서 총사업비 1000억원, 국비 지원 500억원 이상으로 완화하는 국가재정법 개정안이 상정 1분 만에 통과됐다. 그러나 국가재정 건전성을 담보하기 위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관리재정적자 비율을 3% 이내로 유지하는 재정준칙 등 관련 국가재정법 개정안은 또 뒤로 미뤄졌다.
개정안을 여야 합의로 처리한 만큼 새 예타 기준은 내년 예산부터 반영할 수 있다. 이에 따라 내년 총선을 앞두고 500억원에서 1000억원 사이의 대규모 재정을 투입하는 각종 SOC의 사업성이 면밀히 검토되지 않은 채 남발될 것이 우려된다. 예타 도입 이후 지난 24년간 예타 기준이 조정되지 않은 것은 그만큼 국가재정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예타는 지역 발전의 암초가 아니라 재정사업의 제동장치로, 당연히 필요한 SOC는 추진해야 한다. 현행 예타의 방법론이 완벽하지 않다면 그 방법을 수정해야지 대상을 축소해서는 안 된다.
예타를 완화했다면 재정준칙도 함께 처리했어야 했다. 문재인 정부의 최장수 국고지기였던 홍남기 부총리가 “새 정부에서 반드시 재정준칙을 입법화해야 한다”고 고언을 남겼듯이, 진보 정부든 보수 정부든 재정 최고책임자인 두 부총리가 재정준칙을 강조하는 이유를 새길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윤 대통령이 지난 납세자의날 기념식에서 “국민 여러분의 세금은 단 1원도 낭비하지 않고 꼭 필요한 분야에 집중적으로 쓰겠다”고 한 말이 지켜지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