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극한 대립을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중재자로서 김진표 국회의장(사진)의 역할이 빛을 발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중진(5선) 의원이지만 ‘친정’의 입장을 대변하기보다 적극적으로 타협을 이끌어 내고 있다.
지난 13일 민주당은 보건복지위원회에서 본회의로 바로 올라온 간호법 제정안을 표결에 부칠 계획이었다.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이어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을 이끌어내 여권을 궁지에 몰려는 의도가 깔려 있었다. 이 같은 시도에 김 의장은 처음부터 부정적이었지만 민주당은 의사일정 변경 조항을 활용해 강행하려 했다. ‘의원 20명이 동의하면 안건을 상정할 수 있다’는 내용의 해당 조항을 활용하면 국회의장도 이를 거부할 방법이 없다.
하지만 김 의장은 마지막 순간까지 여야 원내대표를 본회의장 단상으로 불러내 중재를 시도했다. 김 의장은 “정부와 (간호법 제정안) 관련 단체가 협의를 진행 중”이라며 “여야 간 추가 논의를 거쳐 합리적 대안이 마련될 수 있도록 간호법 제정안은 다음 본회의(27일)에서 처리하겠다”고 했다. 이 같은 의지에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한발 물러섰다. 박 원내대표는 동료 의원들에게 ‘퇴장하자’는 몸짓을 했고, 이에 민주당 의원들이 일제히 본회의장에서 퇴장하는 장면이 연출됐다.
앞서 양곡법 개정안이 민주당 주도로 국회에서 강행 처리될 때도 김 의장은 스스로 만든 중재안을 내놓으며 여야를 설득했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뻔한 법안을 국회가 처리하는 것은 의회 민주주의에 해롭다’는 신념 때문이다.
김 의장은 지난해 12월에도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해임건의안을 처리하려던 민주당 계획을 한 차례 무산시킨 바 있다. 새해 예산안을 놓고 여야가 돌파구를 찾지 못할 때는 양당 원내대표와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불러 밤늦게까지 합의안 도출을 위해 노력했다.
김 의장은 14일 SBS 라디오에 출연해 “적어도 국민의 70~80%가 ‘이제 그만하면 됐다’고 할 정도로 여야가 충분히 대화하고 타협해 국민이 불안해하지 않도록 하는 게 국회의장이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한재영 기자 jy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