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지 않는 사람도 제목만큼은 알고 있는 <동물농장>과 <1984>는 영국 작가 조지 오웰이 쓴 명작 중의 명작이다. 1903년에 세관 관리의 아들로 태어난 오웰은 사립예비학교에서 상류층 아이들과의 심한 차별을 맛보며 우울한 소년 시절을 보냈고, 장학생으로 들어간 이튼학교에서도 계급 차이를 뼈저리게 실감했다.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5년간 미얀마에서 대영제국 경찰로 근무할 때 영국 제국주의의 악마적 만행을 목격했다. 이후 파리와 런던에서 노숙자, 접시닦이, 교사, 서점 직원 등을 전전하며 작가의 꿈을 키우던 중 서른 살에 첫 소설을 발표했다. 스페인 내전에 참전해 부상을 입기도 한 그는 소설 외에도 정치와 문학 논평, 에세이 등 많은 글을 썼다.
<동물농장>을 발표해 세계적 명성을 얻은 1945년, 그해 아내를 잃고 지병인 폐결핵이 악화된 조지 오웰은 치료보다 전체주의의 종말을 기묘하게 묘사한 디스토피아 소설 <1984> 집필에 몰두했다. 애석하게도 출간 이듬해인 1950년에 세상을 떠난 오웰은 “만약 병이 그렇게 심하지 않았다면 이 소설도 그다지 어둡지는 않았을 것이다”라고 자평했다.75년 전의 예언
비평가들이 ‘전체주의를 비판하면서 미래를 예언한 소설’이라고 한 <1984>는 우리에게 39년 전 과거를 전하는 작품이 되었다. 더 이상 전체주의 체제가 두렵지 않은 세상이 되었지만 <1984> 속 상황을 따라가다 보면 소름이 돋는 걸 느낄 것이다.
내부당원과 외부당원과 노동자계급 프롤이라는 세 계급이 존재하는 1984년, 윈스턴 스미스의 계급은 외부당원이며 직업은 기록원이다. 당의 예언이 언제나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모든 종류의 연설과 통계와 기록을 끊임없이 현재에 맞춰 수정하는 윈스턴을 보면 댓글 조작 사건과 가짜뉴스, 사재기와 총공으로 혼란스러운 각종 차트가 저절로 떠오른다.
윈스턴은 회사는 물론 집안에서의 삶까지 감시당한다. 조금만 이상한 행동을 하면 벽에 걸린 텔레스크린이 호통을 친다. 사상경찰과 마이크로폰, 헬리콥터까지 사중 감시 속에 사는 윈스턴을 보면 오늘날 어디나 설치되어 있는 CCTV, 무엇을 샀는지 다 드러나는 카드 내역서, 누구와 연락했고 어디를 갔는지 선명하게 나타내는 핸드폰이 두렵게 느껴진다.
1984년의 세계는 오세아니아, 유라시아, 이스트아시아로 삼분되었고 이 삼대 전체주의 국가는 끊임없이 전쟁을 벌인다. 삼대 전체주의와 오세아니아를 다스리는 빅 브라더, 그에 대항하는 비밀조직의 수장 골드스타인은 오늘날 초강대국들의 행보와 빅데이터가 움직이는 시장을 자동으로 연상시킨다.모든 인간이 평등한 사회가 가능할까‘전쟁은 평화, 자유는 예속, 무지는 힘’이라는 구호 아래 마음 놓고 숨조차 쉴 수 없는 윈스턴은 일상에 염증을 느낀다. ‘과거를 지배하는 자는 미래를 지배한다. 현재를 지배하는 자는 과거를 지배한다’라는 구호 아래 조작에 매달리는 일도 허망하기만 하다.
윈스턴은 삼엄한 경계망을 뚫고 줄리아와 연애를 시작하고 텔레스크린 설치 의무가 없는 노동자 계급의 집을 빌려 꿈같은 시간을 보낸다. 더욱이 골드스타인의 저서 ‘그 책’을 읽으며 내부당원 오브라이언과 함께 반란을 도모한다. 하지만 자유를 찾아 나선 윈스턴을 기다리는 것은 감옥과 처절한 고통뿐이다.
<1984>는 전체적으로 암울하지만 내용이 속도감 있게 전개돼 읽자마자 빠져들게 된다. 소설 속에 골드스타인이 쓴 ‘그 책’의 내용이 액자소설처럼 끼어 있는데 국가와 계급, 자유와 예속에 대한 조지 오웰의 생각이 중량감을 마구 뿜는다. 윈스턴이 새 삶을 꿈꾸며 읽는 ‘상층계급의 목표는 현재의 상태를 고수하는 것이고, 중간계급의 목표는 상층계급으로 오르는 것이다.’라는 문구가 현대인들의 욕구와 너무 닮아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렇다면 하층계급은? 어린 시절부터 계급사회에서 차별을 느낀 조지 오웰은 ‘하층계급이 목표를 가졌다면 모든 차별을 폐지해 모든 인간이 평등한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다.’라는 문구를 통해 그의 마음을 털어놓는다.
여전히 계급이 존재하고, 모든 것을 감시당하는 세상이 펼쳐지고 있다. 조지 오웰이 피를 토하며 쓴 <1984>의 스토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