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생겼다'는 이유로 버려지던 일명 '못난이 농산물(비규격 농산물)'이 뷰티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상품성이 없어 폐기 수순을 밟곤 했던 기형·소형 농산물을 활용해 자원 낭비를 막는다는 점에서 최근의 '제로 웨이스트' 트렌드와 맞아떨어진 것이다. 기업은 상대적으로 싼값에 원료를 수급하고, 농가는 못난이 재고를 털어내는 '윈윈' 전략이기도 한 만큼 업계의 호응이 높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못난이 농산물을 원료로 사용한 화장품들이 잇따라 출시되고 있다. 전체 농산물 중 많게는 30%가 못난이 농산물로 분류되고, 특히 최근 들어서는 기후변화가 심화하면서 못난이 농산물이 더 늘어나는 추세다. 이런 농산물들을 폐기하지 않고 화장품 원료로 사용하는 화장품 기업들이 늘어나는 분위기다. 식품업계에서 시작된 '푸드 리퍼브' 열풍이 뷰티업계로까지 확산한 것이다. ○순천産 못난이 미나리가 화장품으로
푸드 리퍼브는 음식을 뜻하는 '푸드(food)'와 약간의 하자를 수리해 저렴한 가격에 재판매하는 제품을 뜻하는 '리퍼비시드(refurbished)'의 합성어다. 외형이 판매 기준이 미치지 못하는, 상품성이 낮은 식품을 구매하거나 해당 식품을 활용해 새로운 제품으로 탄생시키는 트렌드를 일컫는다.
국내 클린뷰티 화장품 브랜드인 '라타플랑'은 전남 순천의 무농약 인증 농가에서 못난이 미나리를 수급해오고 있다. 농약을 치지 않는 무농약 재배는 일반 재배보다 못난이 농산물이 더 많이 나오는데, 이를 정상 미나리보다 저렴한 가격에 사 온 뒤 화장품 원료로 사용한다. 미나리에서 화장품에 쓰이는 유효 성분을 추출할 때 미나리의 외형은 중요하지 않다는 판단에서다. 이렇게 수급한 미나리는 라타플랑의 베스트셀러인 '미라니 진정라인' 7종에 쓰인다.
라타플랑 관계자는 "건강한 미나리들이 단지 모양이 예쁘지 않다는 이유로 버려지는 것을 보고 못난이 미나리를 사용하기로 했다"며 "농가와 상생하고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미나리뿐 아니라 당근·감자·복숭아 등 다양한 못난이 농산물들이 새 쓰임새를 찾아가고 있다. 제주 구좌읍에서 생산되는 못난이 당근은 '코스모코스'의 스킨케어 라인인 '비프루브 리얼캐롯'에 쓰인다. 비프루브 리얼캐롯은 생활용품매장인 다이소에서 판매되는 비건 화장품이다. '쏘내추럴'이 만드는 '쏘비건 어글리 포테이토 마스크'는 강원도 강릉에서 나오는 울퉁불퉁한 못난이 생감자를 업사이클링해 만든 제품이다. '어글리시크'는 경북 영덕의 유기농 못난이 복숭아에서 추출한 원료를 사용해 '유기농 복숭아 이너젤'을 만든다. ○매일 500㎏씩 버려지는 양배추 겉껍질도 활용
버려지는 식자재를 활용하는 사례도 있다. 운송 및 손질 과정에서 상처가 나기 쉬운 양배추 겉껍질을 사용한 스킨케어 브랜드 '글리어'가 대표적이다. 경기도 내 학교에 식자재를 공급하는 경기 농수산 진흥원에 따르면 재료 손질 과정에서 매일 500㎏ 정도의 양배추 겉껍질이 버려진다. 글리어는 이렇게 버려지는 겉껍질을 받아 '그린캐비지 스프레이 홉 토너'라는 제품에 원료로 사용하고 있다. '비프로젝트'는 유자씨·당근잎 등 식자재 손질 후 남은 부분들을 모아 원료로 쓴 '스테이 헤어 딥 클렌징 샴푸'를 만들었다.
이렇게 제품화된 화장품들은 '가치소비'를 추구하는 소비자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이끌어내고 있다. 농산물을 대량으로 폐기함으로써 유발되는 환경오염과 폐기 과정에 드는 사회적 비용을 줄일 뿐 아니라 농가 소득 증대에도 기여한다는 이유에서다. 화장품 기업 입장에서도 정상 농산물보다 저렴한 가격에 원료를 수급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양지윤 기자 yang@hankyung.com